방송인 김제동씨의 만담에는 페이소스가 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탁월한 공감능력이 바탕에 있는 듯하다. 지난 8월말 김씨는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상대로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김씨는 이런 말을 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나온 숱한 말들 중 사람의 사람됨에 호소하는 가장 강력한 발언으로 생각되기에 다소 길지만 인용한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지난 달 29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과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인근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제가 어렸을 때 촌에서 자라서 그 새끼 송아지를 먼저 팔면 어미소나 아빠소가 밤새도록 웁니다. 그냥 하루만 우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열흘을 끊이지 않고 웁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고 막 끊어질 듯이 웁니다. 그러면 적어도 제 기억에는 새끼 소를 팔았던 우리 삼촌, 우리 동네 아저씨가 (울먹이면서) 이렇게 그 다음날 아침에 담배 하나 피워 물고 소죽을 더 정성껏 끓였고 영문도 몰랐지만 동네 아이들은 그 소 앞에 가서 지푸라기 들고 뭐라도 먹이려고 했어요.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고, 어떤 이웃도 어떤 사람도 저 소새끼 왜 우느냐고 하는 이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소에게도 짐승에게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그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요.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슬픔이 멈추는 날까지 그때까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과 사회구성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건 공감과 진실이었다. 공감은 두 차원에 걸쳐 있다. 하나는 유가족의 슬픔을 내 슬픔에 가깝게 느끼고 배려하는 것이다. 위 발언으로 김씨가 말하려던 게 이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됨의 기초를 이루는 이런 성정을 연민이나 연대감이라고 달리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월호 참사가 곧 내 일이라는, 참사를 불러온 정치·사회·경제적 구조에서 나도, 내 자식도 희생자가 될 수 있었고 언제고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구체적 실감이다. 유가족의 문제를 내 문제로, 사회구성원 모두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이다.

진실의 효용 역시 두 가지로 나눠봄직하다. 첫째, 피해자 치유적 측면이다. 진실이 바탕이 됐을 때 유가족의 상처는 치유된다. 유가족에 대한 동료 시민의 연민은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진실규명으로 향하는 게 자연스럽다. 둘째, 시스템 치유적 측면이다. 진실을 토대로 잘못된 것을 모조리 뜯어고칠 때 비로소 사회는 참사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직접적인 삶의 문제이다.

공감과 진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둘 중 하나만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진실 규명에 소극적인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유가족에게 모질고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7시간의 진실’에 대해 침묵하고, 새누리당은 유가족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통에 공감한다. 극우세력은 단식하는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이니 뭐니 하는 저열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해방공간에서 백색테러로 악명을 떨친 서북청년단의 재건을 주장한다. 보수언론은 소위 ‘정치화된’ 유가족의 개인사를 침소봉대하며 ‘말 몽둥이’ ‘글 몽둥이’로 두들겨패는 데 여념이 없다. 유가족이 ‘정치적 행동’의 전면에 나선 것은 정부·여당이 진실 규명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세월호 문제의 가장 큰 책임자는 유가족이 아닌가 착각이 들 지경이다.

며칠 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3차 합의안을 내놨다. 유가족의 의사는 그다지 반영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유가족을 이긴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조성된 거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허물고 사회를 ‘내 편, 네 편’으로 찢어놓은 대가로 얻은 승리다.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도리어 ‘참사 이전’보다 퇴행했다. 박 대통령은 승리했지만 한국 사회는 패배했다. 대통령이 참사 피해자인 유가족과 싸울 때부터 예고된 패배였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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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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