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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문을 번역하거나 번역서를 많이 읽다 보면,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는 어휘를 일반인이 의외로 잘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전공자라 해도 대부분 한글세대이므로 본인도 처음에는 낯설었을 텐데, 워낙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익숙해져서 다른 어휘로 바꿀 생각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국어사전에 등재만 되어 있으면 문제없다고 여기기도 하고, 대체할 만한 다른 어휘가 없으니 오히려 낯설더라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휘의 양이 사고의 범위와 깊이를 좌우한다는 생각에서다.

‘기필(期必)하다’는 국어사전 등재 어휘이고 ‘기필코’라는 부사가 사용되고 있어 아주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북송의 학자 정이가 왕에게 올린 상소문 글귀로 유명한 “세속의 논의를 물리치고 대단한 공적을 기필하십시오”라는 번역이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한문에서 동사로 사용된 ‘필(必)’이라는 어휘를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필’의 우리말 대역어 ‘반드시’는 부사로만 쓰일 뿐 동사형이 없다. 공자가 전혀 하지 않은 네 가지 가운데 하나인 ‘무필(毋必)’을 ‘기필함이 없다’로 번역하는 것 말고 대안을 찾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을 신념으로 삼아 불굴의 의지와 극기의 노력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라면, 공자가 전혀 ‘필’하지 않았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난세에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 뭐 하러 그러느냐는 핀잔까지 들어가며, 이상의 실현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한 이가 공자였다. 그런 공자였지만, 어떤 일이든 간에 반드시 되게 하고야 말겠다고 장담하는 법은 없었다. 의지가 약하고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전심을 다하여 할 수 있는 일을 반드시 하는 자세를 견지할 뿐, 그 결과는 사람에게 속하지 않은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의도를 가지고 결과를 미리 장담하기 때문에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고집스럽게 지키려 하고 내 것으로 챙기는 바람에 사달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모든 것을 바친다고 생각하는 이들일수록 되돌아볼 일이다. 나의 ‘필’은 결과인가, 자세인가?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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