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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달 11일부터 단식에 들어갔던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가운데)씨가 8일 저녁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단식농성을 해산하며 울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명칭을 주의 깊게 읽어주기 바란다.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다. 국회에 제출된 중대재해 관련 법안 모두(국민의힘 발의안까지) ‘기업’을 명시했음에도 최종 의결된 안에선 ‘기업’이 행방불명됐다.

법률의 명칭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법의 취지, 정신, 적용 대상 등을 포괄한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다르다. 법률 내용이 정의당 안은커녕 민주당 박주민 의원 안에 비해서도 후퇴한 건 당연한 결과다. 여야는 5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3년간 적용을 미루고,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 범위에 ‘안전보건 업무 담당자’를 추가해 오너가 책임을 면할 길을 열어줬다.

여야라고 썼지만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할 곳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개헌을 제외하곤 뭐든지 할 수 있는 의석(174석)을 보유하고 있다. 중대재해법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사위와 구체적 심사를 담당한 법안심사 제1소위에서도 과반 의석을 갖고 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는 정부·여당의 합작품이었다. 이 부분은 당초 여야 발의안에 없었다. 지난 6일 소위에서 갑자기 강성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요청하고 나섰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중기부 안을 지지하자, 백혜련 소위원장이 절충안을 냈다. 국민의힘 측이 다시 거부하자 민주당은 더 버티지 않았다. 백 소위원장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그냥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하는 걸로 정리하겠다”고 결론 냈다.

지난해 말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등이 단식하던 농성장을 찾았다. 김 원내대표는 “야당이 심의를 거부하지만 설득해보겠다”며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 김 이사장의 일갈이 화제가 됐다. “여태까지 여당이 혼자서 많은 법을 통과시켰잖아요. 왜 이 법은 꼭 야당이 있어야 해요?”

지난 9일 김 이사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 법안 통과 직후 29일간의 단식을 중단한 그는 입원 치료 중이었다. “(김 원내대표에게) 있는 그대로의 심정을 말한 겁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이 의지가 없고, 말뿐이라 많이 답답했어요.” 김 이사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이 적용 대상에서 빠진 데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사람이 계속 죽어 나가는데도 오로지 돈만 생각하는 기업은 없어지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사고가 ‘기업범죄’임을 인식하고 최고경영자·법인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추진돼왔다. 위험을 더 약하고 낮은 곳으로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 고리를 끊자는 여론도 작용했다. 가난한 사업장‘이니까’ 안전관리 책임을 면해주겠다고 해선 곤란하다. 가난한 사업장‘까지도’ 안전관리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하는 쪽으로 가야 옳다.

정부와 여당은 정확히 반대로 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적용 대상에서 뺐다. 한국의 전체 사업장 가운데 79.8%가 5인 미만이다. 최근 10년간(2011년~2020년 6월) 산재 사망자 중 31.7%(윤준병 민주당 의원 2020년 국정감사 자료)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다. 앞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초등 산수만 할 줄 아는 기업이라면 위험한 작업은 모두 5인 미만 사업장에 떠넘기려 할 것이다. 백혜련 소위원장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원청기업은 처벌받는다”고 했다. 이 경우도 빠져나갈 길은 열려 있다. 오너나 대표이사 대신 안전보건 담당 ‘바지 이사’가 총대를 멜 수도 있다. 산재조차 하청에 떠넘기라고 친절하게 조언하는 법이 생겼다니.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은 ‘캐치올 정당’(국민정당)이지 특정한 이념을 좇는 진보정당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경향신문 1월11일자 보도). 국민 10명 중 6명이 찬성하는(리얼미터 2020년 11월 조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누더기로 만들어놓고 캐치올 정당 운운하다니 낯도 두껍다.

민주당 강령은 전문에 “서민과 중산층의 이해를 대변하고, 모든 사람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제 바꿀 때가 됐다. “부자와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고,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로. 강령 개정이 싫으면 중대재해법 개정에 즉각 나서라.

김민아 토요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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