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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법칙

경향 신문 2020. 1. 30. 10:1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밝혀 나아갈 방향을 큰 틀에서 제시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당위의 가치가 담긴, 사람이 만든 법칙이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법’이다. 약하고 강한 징벌을 받을 수 있지만, 어쨌든 어기는 것이 가능은 하다. 어기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면 우리는 법을 만들지 않는다. 자동차의 공중 비행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 이유가 없다. 법이 필요한 이유는 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따르는 법칙은 다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어길 수는 없다. 손에서 가만히 놓은 물체가 땅을 향해 아래로 떨어진다는 자연법칙은 당위가 아닌 사실의 법칙이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생각만으로 돌을 위로 띄울 수는 없다. 사람이 만든 당위의 법칙과 달리 ‘스스로 그러함’을 뜻하는 자연(自然)은 금지하지 않는다. 어기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니 금지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만든 당위의 법칙이 “이렇게 하는 것도, 저렇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둘 중 요렇게 하기로 약속해요”라고 할 때, 자연은 “네 맘대로 해봐. 그게 되나”라고 말한다. 

확인된 자연현상이 그렇게 관찰되는 이유는 자연의 법칙이 그 현상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어긋나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자연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금지하지 않고 허용한다.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틀린 생각이다. 자연이 허락했으니 동성애가 존재하는 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스럽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금지한다는 발상은 돌멩이의 자유낙하를 금지한다는 발상과 다를 것 하나 없는 어불성설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자연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을 허락하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제3자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자신과 달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이의 감정을 막겠다는 발상은 야만임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이 알아낸 당대의 자연법칙은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다. 자연법칙은 우리 머릿속이 아니라, 머리 밖 자연에 존재하는 실재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가 많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 자연법칙을 발견할 주체가 없던 시절에도 돌멩이는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 인식의 틀이 바뀔 수 있다. 흙, 물, 공기, 불, 네 종류의 원소가 있고, 흙의 자연스러운 위치는 공기의 아래이므로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진다고 설명한 것이 그리스의 철학이다. 뉴턴이 완성한 고전역학은 지구가 중력으로 돌멩이를 잡아 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설명의 대상인 자연은 그대로지만, 우리가 자연을 설명하는 방식이 변한 거다. 이후, 뉴턴의 고전역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으로 외연을 넓혔다.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자연법칙은 변화와 발전에 열려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물리학자들이 찾아낸 자연의 법칙을 ‘법칙’이라고 부르지 않는 경향이 눈에 띈다. 뉴턴의 중력법칙이라고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고 하듯이 ‘이론’이라는 표현이 더 널리 쓰인다. ‘법칙’이라고 하면 인간의 합의에 의해 정해진 당위의 법칙을 먼저 떠올리는 오해를 막자면, ‘이론’이 ‘법칙’보다는 더 나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론’이라 하면 사람들은 이론의 가변성에 과도하게 주목하는 경향도 눈에 띈다. 누가 어떤 주장을 할 때 “그건 그냥 네 이론일 뿐이야”라고 할 때의 ‘이론’의 의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이론’과 단어는 같아도 그 경중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물리학의 이론은 자연현상을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사고의 틀이라는 면에서, “단지 네 이론”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러 생각의 틀이 모여 구성된 전체인 물리학은 확실성의 정도가 제각각인 다양한 이론들의 모임이다.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이론,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이론, 닫힌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이론 등은 물리학의 토대 중 가장 튼튼해, 어느 누구도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편, 최근 실험으로 관찰된 특정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대체 가능한 여럿이 경합하는 약한 확실성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합의한 당위의 법칙이 외부의 다른 사회에서는 성립하지 않음을 볼 때 우리는 세상을 보는 더 큰 시선을 얻는다. 외계의 지적 생명을 만나게 되면, 나는 그들이 자연을 기술하는 이론의 틀이 궁금하다.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은 우주 어느 문명도 동의하겠지만, 우리가 가진 고전역학의 운동법칙을 그들은 어떻게 기술할지, 우리의 양자역학과 그들의 양자역학은 어떻게 다를지, 난 무척 궁금하다. 자연현상은 같아도, 기술 방식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설명하는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만남은 과학의 역사상 가장 큰 도약을 만들 것이 확실하다. 

지구에서 본 태양계 행성의 위치 정보를 학습시켰더니 인공지능이 행성 운동의 중심에 태양이 있다는 태양중심설을 스스로 알아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인류에게 수천년이 걸린 태양중심설을 인공지능은 짧은 시간에 발견했다는 점에서 무척 놀라운 결과다.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인공지능이 거둘 미래의 성취가 나는 벌써 궁금하다. 미래의 인공지능이 찾아낼 우리와 다른 자연법칙은 어떤 모습일까. 물리학자가 필요 없는 물리학의 발전이 가능한 세상이 도래하지는 않을까. 이해 없이 예측할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물리학의 아름다움을 얘기할 수 있을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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