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해주신 재밌는 얘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한 일꾼이 하루 품삯을 묻는 만석꾼 고용인에게 첫날 딱 쌀알 한 톨을 달라고 했다. 이튿날에는 하루 전 품삯의 두 배인 쌀알 두 톨, 다음날은 마찬가지로 전날 품삯의 두 배인 네 톨. 몇 번 손가락을 꼽아보던 만석꾼은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동의한다. 일주일 지나도 하루 품삯으로 채 한 숟가락에도 못 미치는 쌀알을 달라고 하니, 아주 멍청한 일꾼이라고 생각하면서.

쌀 한 톨의 무게와 쌀 한 되의 무게를 비교해 계산하면, 16~17일이 지나면 하루 품삯이 쌀 한 되쯤 된다. 그리고 22일째가 되는 날 일꾼은 하루 품삯으로 쌀 한 가마니를 받는다. 다음날은 쌀 두 가마니, 그 다음날은 하루에 무려 쌀 네 가마니를 받는다. 만석꾼 부자 고용인이 한 해 수확인 만석 전체를 일꾼의 하루 품삯으로 지급해야 하는 날은 한 달하고 일주일쯤이 지난 뒤다. 멍청한 것은 일꾼이 아니었다. 이게 웬 횡재냐 하며, 덥석 계약을 수락한 만석꾼이 멍청했다는 얘기다.

초등학생들을 위해 선생님이 만드신 것으로 보이는 이 재밌는 옛날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만, 우리는 얘기를 더 이어갈 수 있다. 하루에 두 배씩 꾸준히 늘어나면 일 년 뒤 쌀알의 숫자는 약 10의 110승이 된다. 1뒤에 0을 110개를 붙여 적어야 하는 아주 큰 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원자의 전체 숫자가 이보다 훨씬 작은 10의 80승 정도이기 때문이다. 잠깐 계산해보니 관측 가능한 우주의 부피를 쌀알로 가득 채우려면 10의 88승개의 쌀알이 필요하다. 일 년이 지나면 우리가 사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우주는 빈틈없이 쌀알로 가득 차고도 넘치고, 우리 우주와 같은 크기의 10의 22승개의 다른 우주도 쌀알로 빈틈없이 채울 수 있다. 

선생님 얘기의 쌀알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의 ‘몇 배’꼴로 늘어나는 것들이 있다. 기하급수적인 증가, 혹은 지수함수적인 증가라고 부른다. 운이 좋아 일 년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10%를 유지하는 펀드에 가입했다면, 펀드의 적립액은 산술급수가 아닌 기하급수를 따라 늘어난다. 경제성장을 매년의 ‘성장률’로 측정하는 것도 이처럼 지수함수를 따라 경제가 성장한다는 ‘가정’에 따른 계산법이다. 기하급수와는 다르게 늘어나는 것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산술급수적인 증가이다. 오늘 한 톨이면, 내일은 두 톨, 다음날은 세 톨, 그리고 네 톨, 이렇게 두 날 사이에 늘어나는 양이 딱 정해져 일정한 방식이다. 연봉이 정해진 회사원의 일 년 동안 누적 수입은 일월, 이월, 삼월, 시간이 흐르면서 산술급수를 따라 늘어난다. 당연히 기하급수가 산술급수보다 훨씬 빨리 늘어난다. 어제보다 두 톨을 더 받는 일꾼과, 어제보다 두 배를 더 받는 일꾼이 있다고 하면, 며칠만 지나면 둘의 품삯 차이는 무지막지하게 커진다. 한 일꾼이 밥 한 숟가락의 쌀알을 받을 때, 다른 일꾼의 하루 품삯은 만석꾼의 땅 전체를 사고도 남는다. 

영국의 맬서스는 18세기 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식량의 생산으로 부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류의 암울한 빈곤의 미래를 예상했다. 그가 점쳤던 암울한 미래는 우리 후손들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한스 로슬링의 책 <팩트풀니스>에 의하면, 인구 증가는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인 규모로는 어린아이들의 숫자가 증가를 멈추었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에서 인구가 늘고 있는 것은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보건과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예측 이후 인류가 걸어온 길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경제성장이 인구 증가보다 더 빠른 기하급수를 따랐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곳에 상존하는 빈곤 문제는 인류의 총생산량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배분의 문제다. 과식으로 늘어난 몸무게를 줄이려 헬스클럽에 가는 사람들과 하루 한 끼의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게 현대의 모습이다.

일꾼의 쌀알 품삯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쌀알 품삯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만석꾼의 파산으로 결국 멈춘다. 만석꾼이 어떤 방식으로라도 품삯을 계속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우주에 존재하는 10의 80승의 원자로 10의 110승의 쌀알을 만들 수는 결코 없다는 자명한 진실이 더 이상의 증가를 가로막는다.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영원히 계속될 수 없어 결국 멈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3월 하순,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지수함수를 따라 늘고 있다. 이런 증가의 양상이 결국 수그러들 것은 분명하다.

전염병의 전파에 대한 여러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 있다.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막는 강력한 제한은 단지 전염병의 대규모 확산 시기를 늦출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 일관된 연구 결과다. 결국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염의 최종적인 규모는 그 나라의 방역 시스템이 결정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의 증가폭이 완화되는 시점이 나라마다 다른 이유다. 아무런 방역의 노력이 없다면, 수많은 확진자 중 상당수는 인체의 면역계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감염을 이겨내겠지만, 엄청난 수의 사망자를 동반하게 된다.

늘어난다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빠르게 늘어나는 것과 느리게 늘어나는 것의 차이는 정말 크다. 빠르게 늘어나는 것을 느리게 늘어나는 형태로 바꾸고 결국 늘어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 발병지가 어디인지를 따지며 외부를 비판하는 것은 비겁한 핑계 대기다. 혐오는 아무것도 막지 못한다.

<김범준 |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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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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