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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빌딩숲에 폭 파묻혀 자동화된 세계 속에 사는 사람이라도 자연을 접하지 않고 지내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아니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고 또 만난다. 누구든 일상생활에서 동식물을 가장 자주 접하는 곳, 다름 아닌 바로 밥상이다. 산에서 뜯은 나물, 흙에서 자란 야채, 그리고 바다에서 건진 생선. 서식지로부터 그릇 위까지 긴 여행을 마친 여러 종의 생물이 하루에 세 번, 또는 그 이상, 우리와 마주한다. 웬만한 한국인의 식탁은 단일 먹거리가 아닌 최소한의 생물다양성이 나타나는 식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원재료가 연상이 잘 안되는 음식도 많다. 가공이 많이 된 식품일수록 원래의 모습과 멀어져서 실제 동식물과 만나는 듯한 느낌은 적어진다. 요즘 각광받는 홀 푸드(whole food)나 매크로바이오틱(macrobiotic) 식품은 건강을 위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을 먹는지 제대로 인식하면서 먹게끔 해주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식탁을 좀만 달리 보면, 자연과 야생이 보이기도 한다.

개중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상에 올라오는 음식 중 가장 온전한 형태를 띠고 있어 그것이 자연으로부터 온 하나의 생물임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것. 바로 물고기이다. 잘라서 조리하기도 하지만, 머리부터 꼬리까지 고스란히 통째로 선보여지는 경우도 많다. 오늘날은 쌀이 나무에서 자란다고 생각하는 일명 ‘벼나무’ 세대가 사는 시대이지만, 제아무리 무관심한 이라도 눈앞의 생선구이를 보며, 젓가락으로 뼈를 바르며, 그것이 어딘가에서 잡아 올린 어떤 특정한 ‘놈’이라는 것을 안다. 알지만, 동시에 알지 못한다. 물고기는 이미 너무나도 음식물과 동격이 되어서이다.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조각이든 완전체이든, 물고기는 동물이 아닌 먹을거리로만 인식된다. 사람들은 돼지나 소 자체를 보며 맛있어하진 않는다. 오히려 고기조각이 아닌 살아 있는 형태로 가축을 만나면 커다란 눈망울이나 귀여운 몸동작에 이들도 생명이라는 깨달음에 정신이 환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류는 천연의 모습 그대로일 때에도 횟감일 뿐이고, 매운탕거리일 뿐이다.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생명이 아니라, 먹히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인 것이다. 이름부터 수중(水中)에 있는 고기. 물고기. 밥의 신세. 찬밥신세.

봄이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몇 주 전, 나는 한국의 민물고기와 평생을 함께해온 한 청년을 만났다. 우리는 멸종위기종 2급인 꾸구리와 돌상어를 조사하러 섬강을 향했다. 여주와 원주의 경계 부근,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 어딘가에 이 귀한 어류가 제법 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출발부터 심상치 않았다. 멸종위기를 알리기 위해 그가 설치해놓은 현수막은 며칠 전 불어닥친 강풍에 찢겨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잔해를 추스르자 강변 가까이에 주차된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강 중간에 몇 명이 이미 배를 띄워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그물이 쳐진 걸 봤었는데, 저 사람들 것인가?” 청년은 우려 섞인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곧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평소에 잘 발견되던 곳도, 산소가 풍부한 여울에서도, 꾸구리는 몇 마리도 채 나오지 않았다. 대체 원인이 뭘까? 그때 강바닥을 헤집어놓은 듯한 퍽 넓은 지역을 발견했다. 얘기인즉슨, 소위 ‘오프로드’ 전용 4륜구동 자동차를 몰고 강안에까지 들어온 자국이란다. 아연실색하고 있을 때, 어부들은 망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13개까지 세고 그만두었다. 저편에서는 누군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낚시금지라고 적힌 낡은 표지판 하나가 덩그러니 강바람을 맞고 있었다.

'2014 서울빛초롱축제'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밤 서울 청계천에 형형색색의 각종 등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출처 : 경향DB)


물고기는, 아니 어류는, 어느 생명 못지않게 신비로운 동물이다. 어류는 포식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몸 색깔을 주변과 맞출 줄 알고, 위급할 땐 죽은 척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다른 어류의 성별이나 서열을 알아차리고, 과거의 라이벌이나 협력자를 기억하기도 한다. 또 기생충을 제거해줘서 ‘의사 물고기’ 역할을 하는 청소놀래기가 자기의 입속을 드나들도록 허락하고, 기생충이 아닌 살점을 뜯어먹는 ‘반칙’을 범하면 바로 ‘치료’를 중단해버린다. 눈이나 옆줄을 사용할 때 좌우 중 한쪽을 선호하는 이른바 ‘왼쪽잡이’나 ‘오른쪽잡이’ 물고기도 있다. 각종 굴, 은신처는 물론 수생식물을 엮어 건축을 할 줄도 알며, 세간의 편견과는 달리 어류의 기억력은 수일 또는 수주까지 미치기도 한다. 물론 고등한 행동양상을 나타내야지만 어엿한 생물로서의 지위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토록 오묘하고 멋진데도, 초장에 찍어먹을 재료 정도로만 치부되는 현 어류의 사회적, 문화적 지위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현상이다. 꾸구리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섬강은 어류학회가 발표한 2011년 논문에서도 서식지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된 곳이다. 그러나 과도한 어업행위와, 믿을 수 없이 파괴적인 취미활동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디 이곳 하나뿐이랴. 우선 이름부터라도 물고기를 더 이상 물고기라 부르지 말고, ‘물살이’로 재명명하길, 야생학교는 제언한다.


김산하 | 영장류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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