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지나고 경칩도 지나 이제 춘분을 앞두고 있습니다. 춘분은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반씩이어서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고, 춥고 더운 정도 또한 같다는 날입니다. 봄이지요. 긴 겨울 맞으며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에 설렘과 술렁임이 돌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절기도 시간에 가만히 얹혀 순순히 따라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꽃눈과 잎눈이 터지는 것을 샘내는 추위를 한두 차례 더 지내야 할 터이니, 제대로 봄이 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더군다나 숲의 모습은 여전히 겨울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잎 하나 내지 못한 채 빈 몸으로 무뚝뚝하게 서 있는 나무가 그러합니다. 숲 바닥으로 녹색이 번지고는 있으나 갈색은 녹색에게 제 자리를 다 내줄 마음이 아직 없어 보입니다. 숲 이곳저곳을 오래도록 지켜보아도 움직이는 무엇이 없습니다. 아, 하나 있습니다. 나비입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봄바람의 꽃잎도 방긋방긋 웃으며/ 참새도 짹짹짹 노래하며 춤춘다’

동요 ‘나비야’의 노랫말입니다. 어릴 때 많이 불렀고, 지금도 나비를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라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입니다. 하지만 봄날 즈음 학교 울타리를 넘으며 맑고 곱게 울려퍼졌던 이 아름다운 노래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교과서가 이리저리 바뀌면서 결국 찢겨나간 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새롭고 더 좋은 동요로 채워졌으리라 믿지만 안타까움은 남습니다. 그런데 책에서 사라진 것 말고도 안타까운 것이 또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비야’를 엄마에게 직접 배워 부른다 하더라도 이리 날아와 줄 만큼 노랑나비와 흰나비가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파, 폭설, 폭염, 폭염으로 인한 산불, 열대야, 집중호우, 폭우, 홍수, 가뭄….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며, 남의 나라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한 해를 나는 것이 녹록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자료들이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지만 몸으로 직접 느끼기에도 지구온난화는 현실이며,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로 기울고 있다는 현실 또한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더군다나 여름, 정말 덥고 후텁지근합니다. 작년 여름도, 재작년 여름도, 그 전 여름도 그랬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내 몸만 뜨거워지면 그렇다 치겠는데 도시 전체가 열로 달궈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변보다 도심 지역의 기온이 높게 나타나 도심이 하나의 뜨거운 섬이 되는 현상을 ‘열섬효과(heat island effect)’고 합니다. 물론 열섬효과는 자연 본래의 모습을 제거하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공들여 세운 건물을 무너뜨려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묘책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 중 자연 본래의 모습과 닮아가는 방법으로 근래 친환경 녹색도시 조성을 위한 ‘옥상녹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노랑나비


옥상녹화 사업은 말 그대로 옥상에 식물을 식재해 옥상을 푸르게 하는 사업을 말합니다. 그런데 식재를 하려면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깊이의 흙이 필요하며, 게다가 비가 오면 흙은 빗물을 붙들고 있으므로 옥상녹화 사업은 무엇보다 건물이 그 총체적 하중을 단단히 버텨낼 수 있는 범위에서 시행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따라서 옥상녹화 사업은 건물의 규모와 형편을 고려해 달리해야 합니다. 어떠한 형태든 도심에서의 녹지 확보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옥상녹화는 다양한 힘을 발휘합니다.

우선 강한 자외선과 열 그리고 산성비로부터 건물 자체를 보호함은 물론 열섬효과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열섬효과의 저감은 냉난방 비용의 절감과 직결되어 귀중한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녹지공간의 확대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줄이고 산소의 양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으니 지구온난화를 저지 또는 지연시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또한 빗물을 저장함으로써 홍수를 예방하고 가뭄을 극복하는 데 작은 도움이나마 보탤 수 있습니다. 도시 소음의 흡수 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으며, 도시의 경관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기쁨에 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옥상녹화는 생태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도심의 규모만큼 생태계가 단절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로만 덮여 있는 도심의 건물은 대부분의 생물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차단벽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옥상의 녹화는 다양한 생물들이 도심과 주변의 자연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제가 어제 아닌 듯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꿈에서나 그려 보았던, 아니 꿈에서조차 떠올릴 수 없었던 일들이 바로 눈앞에서 날마다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펼쳐지는 신기한 세상에 넋이 나간 사이, 우리 곁에 꼭 있어야 하고 그래서 우리가 진정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것들마저 잊거나, 잃거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맞겠습니다. 하지만 다 잊어도, 다 잃어도, 다 버려도 우리 곁에서 나비마저 그리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먼 숲으로 숨어든 나비가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기에는 길이 너무나 멀고 험합니다. 징검다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직장의 옥상과 빈 공간을 형편에 따라 푸르게 가꿔 그 하나하나가 단절된 허공을 딛고 넘어올 수 있는 나비의 징검다리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또한 옳게 숨쉬는 길이며, 나비가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긴 겨울 지나 이제 봄의 문턱을 넘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 봄이 나비조차 만날 수 없는 봄이라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 더군다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습니다. 자연은 봄부터 여름을 준비합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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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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