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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를 보면 얼굴이 떠올라

그 비누를 사용하던 얼굴

비누 거품을 문지르면서 눈이 쓰라려 웃는 것처럼 찡그리던 얼굴

가족은 비누를 같이 쓰는 비누 공동체

비누칠을 할 때는 처음엔 누구나 얼굴이 웃고 있지

참 오만방자, 건방지게 살기도 했는데

비누 거품은 간지럽다가

눈에 들어가면 쓰라려서 눈을 감게 되지

비누 거품이 눈에 들어가면

거만과 위엄이 다 소용 없어

두 눈을 감고 쓰라리게 아픔과 양심을 생각하게 되지

가족은 비누를 같이 쓰던 비누 공동체

소멸의 비누

어제는 비누방울을 불며 같이 웃고 놀았는데

비누 거품처럼 흔적도 없이 어디로 헤어져 갔네

-김승희 신작시 <비누 공동체> 중

5월은 ‘가정의달’이라는 말처럼 아무래도 5월에는 가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아픈 곳을 자꾸 생각하듯 사람은 현재 자기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에 더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요새는 1인 가구도 많고 독거노인, 독거청춘도 많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단어에 그리움과 결핍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가정식 백반’이라는 간판을 붙인 식당에 손님이 더 몰린다. “무엇을 볼 때 가장 가족이 생각납니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첫 번째로는 누구나 당연하게도 음식을 떠올리게 된다.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만 살아온 미셀 자우너가 쓴 소설 <H마트에서 울다>를 읽고 나도 울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로 시작되는 그 책에는 한국식 식재료와 음식 등을 파는 H마트에 가서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라고 묻는다. 음식은 정체성인 것이다. 계란 장조림, 동치미, 삼겹살 구이, 찌개나 전골, 만두, 단무지, 갈비, 해물 짬뽕 등 엄마랑 해먹던 한국 음식을 볼 때마다 그녀는 “음식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운다.

미국 뉴욕주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어 뉴저지의 H마트에 자주 가는 딸에게 “나중에 내가 세상을 떠나면 너는 어떤 엄마 음식이 기억날까?”라고 물어보았다. 딸은 좀 생각하더니 “김치찌개지 뭐”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나는 뭔가 그럴싸한 다른 것은 없을까 해서 “다른 건 없어?”라고 물어보니 딸은 “글쎄. 엄마 밥상엔 원래 다양성이 부족하잖아”라고 한다. 진실도 어떤 때는 상처가 된다더니 바로 그 말이 그러했다. 난 좀 실망을 하여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같은 질문을 해보니 아들은 “엄마 음식? 생각날 거 많지, 된장찌개”라고 대답한다. 아, 역시 나의 밥상에는 다양성이 부족하구나, 하고 막 실망을 하려는데 아들이 “엄마가 만든 잡채, 잔치 국수, 노란 달걀 지단과 표고버섯과 소고기볶음, 김 가루를 고명으로 올린 떡국, 미역국, 다 좋지. 엄마 음식은 화려하잖아”라고 말한다. 아, 그랬던가? 엎드려 절받기. 웃음.

음식 다음으로 가족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비누다, 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욕실 세면대에 놓여 있는 비누를 볼 때 유난히도 가족이 생각난다. 비누는 가족들이 함께 사용하는 것이고 비누의 살결에 가족 각자의 지문과 체온이 묻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아이들이 얼굴에 비누칠을 하다가 눈에 비누 거품이 들어가 울던 기억. 가족들이 모두 차례차례 손에 비누를 문지르고 얼굴에 비누칠을 하던 풍경들. 그러면서 점점 작아지던 비누의 몸. 비눗방울이 하늘로 날아가며 무지개색을 반사할 때 아이들이 외치던 경이로움의 함성. 비누 거품은 향기를 주고 사라져 가는 것. 그래저래 화사하고 허전하기도 한 5월의 풍경이다. 가족은 음식 공동체 못지않게 비누 공동체다, 라고 생각하자 슬픔이 와락 밀려왔다.

김승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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