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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김웅의 덧뵈기

조말생 성공기

경향 신문 2019. 8. 22. 10:47

조선 초 함길도에 김생이라는 거부가 살았다. 함길도는 함경남북도에 걸친 땅인데 발해가 망한 후 거란족 등이 차지했다가 조선 초에 다시 우리 땅이 되었다. 김생은 미개척지 함길도로 이주하여 황무지 개간으로 큰 부를 이뤘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그건 동화 속 이야기이고 현실에서는 늘 악당이 등장한다. 김생의 친구 김원룡에게는 김도련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이 자가 무척 사악했다. 김도련은 흉계를 꾸며 김생의 부를 빼앗기로 마음먹는다. 김도련은 ‘김생이 내 아버지의 노비였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면서 노비추쇄문서를 형조에 제출했다. 노비추쇄문서는 도망간 노예를 찾아달라고 형조 등에 제출하는 소장과 같은 것이다. 친구 사이였던 김생과 김원룡이 주종관계일 리 없건만, 황당하게도 형조는 김도련의 손을 들어준다. 김생과 후손들을 김도련의 노비로 만들어버리고 모든 재산을 빼앗아 김도련에게 넘겼다. 

상식 밖의 결론에는 늘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당시 형방승지였던 조말생이 김도련의 뇌물을 받고 이런 불법을 자행한 것이었다. 김생 일가는 억울함을 풀려고 했으나 조말생의 권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놀랍게도 조말생은 당대의 염근리로 행세하면서 왕의 두터운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탐관오리가 청백리로 둔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낡은 신발을 신거나 낡은 가방만 들쳐 메도, 서민의 대변자인 것처럼 떠들기만 해도 가능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생 일가는 형조에 김도련을 고발했다. 하지만 병조판서로 승진한 조말생은 손을 써 이를 방해했다. 조말생의 지시에 따라 재판을 지연한 형조참의는 그 대가로 친척들의 벼슬을 점지받았다. 김생 일가는 다시 사헌부를 찾아갔다. 역시 조말생은 사헌부를 압박했다. 인사권으로 위협하고 부당한 수사를 한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 하지만 사헌부는 조말생의 권력에 굴하지 않고 진상을 밝혀냈다. 조말생뿐 아니라 김도련으로부터 뇌물(노비)을 받은 관료 수십명의 범죄를 밝혀내 왕에게 보고했다. 좌의정, 우의정, 개국공신, 병조참의 등이 포함되어 있어 지금으로 치면 김도련 게이트라 불릴 만한 대형 부패사건이었다. 하지만 왕은 조말생의 죄상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요즘으로 치면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안 맞지만 불법은 없었다’는 만능 치트키다. 이에 힘을 얻은 조말생은 사헌부 관원들을 모함했다. 아들 조선은 폭력배를 동원하여 대사헌을 감시했다. 심지어 사헌부에서 조사받고 나온 증인을 납치하여 폭력으로 증언을 번복시키기도 했다. 

사헌부의 수사가 막히자 사간원이 나섰다. 사간원은 조말생에 대해 국법에 따라 사형에 처하라 주청한다. 하지만 왕은 자신이 이미 결정했는데, 더 이상의 처벌을 주장하는 것은 반역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사슴을 말이라 우길 수 있고, ‘내가 납득되지 않으니 당신의 주장은 틀렸다’고 억지 부릴 수 있는 게 권력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말생은 사면되었고 더욱 승승장구했다. 왕은 그를 의금부 제조로 임명했다. 의금부는 왕의 교지를 받들어 수사와 재판을 하는 최고의 사법기관이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 치면 뇌물 전과자가 대법원장 혹은 검찰총장이 된 것이다. 지금도 논문 표절, 주가 조작 가담,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재산 빼돌리기 등을 해야만 고관대작이 될 수 있으니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비정상이 반복되면 그것이 정상이다. 물론 사간원 대간들은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시위를 했다. 조말생과 왕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조말생의 아들은 문과에도 급제했다. 쓰앵님을 동원했는지, 인턴을 출중하게 수행한 덕인지 모르나 아무튼 조말생이 과거를 담당하는 예문관 대제학으로 있던 때였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로또급 행운은 늘 권력자의 자식들에게만 일어난다. 행운은 권력지향적인가 보다. 행운을 믿지 않은 홍문관 관리들은 조말생의 아들에 대한 급제자 발표를 거부했다. 조말생은 인사권으로 그들을 ‘조졌다’. 간신이 총애를 받으면 권신이 되고, 권신은 부정과 부패를 낳는다. 

이야기의 결말은 씁쓸하다. 조말생은 판중추원사 등 요직을 차지하고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이 모든 사건의 주범 격인 김도련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억울하게 노비가 된 김생의 후손들은 결국 면천(免賤)하지 못하고 노비로 살다 죽었다. 현실은, 동화와 달리 대개 악당이 승리한다. 지금 우리가 그보다 나은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조말생은 능력이라도 출중했다. 그나마 남은 거라고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거한 청요직 관리들의 기상 정도라 할 것이다. 

광해군 3년 과거에서 ‘가장 시급한 나랏일이 무엇인가’라는 책문이 나왔다. 이에 합격자 임숙영은 ‘임금의 잘못이 국가의 병이다’라고 답했다. 격분한 광해군은 임숙영을 불합격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넉 달에 걸친 삼사의 격렬한 반대에 결국 왕은 뜻을 굽히고 임숙영을 합격시킬 수밖에 없었다. 광해군으로서는 분할 노릇이지만, 이게 나라다.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검사내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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