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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 이백에게 달은 벗이었다. 세상에는 자기와 함께할 벗 없지만, 속세를 벗어난 곳에는 휘영청 말간 달이 때 되면 찾아왔다. 그럴 때면 한 동이 술을 허리춤에 차고 또 다른 벗 산의 품에 안겨 달과 함께 흐드러지게 놀았다.

이백과 쌍벽을 이룬 두보에게 달은 질문이었다. 몇 년째 이어진 전란은 대체 언제 끝날지, 오래 못 만난 가족이 굶주리지는 않은지, 아이들은 건강한지 등등. 달빛 휘영청대면 “중천의 달빛 저리 좋은데 그 누가 같이 보고 있을까?”(‘숙부(宿府)’)며 물었고, “가을바람 한 자락 내 옷자락 날릴” 제는 “모르겠다, 밝은 달 누구 위해 저리 좋은지?”(‘추풍(秋風)’) 하며 탄식에 젖곤 했다. 달은 그렇게 때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밝을수록 깊은 시름 안기는 고약한 질문 유발자였다.

하여 어떤 시인은 마당 나무에 걸린 달을 보면서 “올가을은 어찌하여 예년 가을답지 않은가?”며 되물었고, 또 다른 시인은 달빛 머금은 꽃을 보며 “그 꽃 그 달 옛 그대로이건만, 이 내 마음 어찌 옛 같을 수 있으랴?”라고 반문했다. 밤새 기울인 술잔으로 달이 지면 가는 벗 애달파 “만날 날 그 언제일꼬?” 하며 목메었고, 잠결을 파고든 침상 맡 밝은 달빛에 “온 땅 가득 서리 내렸나 보다”며 의심했다. 사실 어찌 달뿐이겠는가! 시인에게 우주 삼라만상은 온통 물음을 야기하는 도발꾼이었다.

그래서 시인의 삶은 풍요로웠다. 물질적으로 부유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름난 시인 가운데 궁벽한 이 참으로 많았지만, 그들은 많은 물음을 지녔기에 시로써 자기 삶을 풍부히 채워냈다. 삶은 물질뿐 아니라 글로도 풍성해질 수 있었음이다. 그런 삶이 고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노력도 하고 열정도 내며 나쁘지 않게 살았음에도 삶이 여의치 않을 때, 사회가 그런 나를 연신 배반할 때, 글은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또 다른 동력이자 밑천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다.

코앞이 한가위다. 대학원 때 은사께서 일러주신 시 한 수가 문득 떠오르는 시절이다.

“하늘 높고 말간 달빛 강물에 녹아든다/ 강 넓고 바람 산들, 수면엔 서늘함이 감돌고./ 강물은 하늘 함께 어우러져 한 빛인데/ 하늘엔 맑은 빛 가로막는 구름 한 점 없고.”(구양수, ‘달[月]’)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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