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고나면 어떤 문장이나 장면이 오래 남기 마련이다. 남아서 간직되었다가 문득 떠올라 위로가 되기도 하고, 서늘한 반성이 되기도 하고, 난데없이 웃음이 터져나오게 하기도 한다. 혼자 잘 웃고 혼자 잘 놀라는 나는 툭하면 그런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의 한 장면을 가끔 떠올릴 때가 있다. “인생은 스케이트장이야. 모두가 넘어지지”라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다. 모두가 넘어질 뿐 아니라 계속해서 넘어지게 되기도 할 터인데, 그 뒷말이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이 장면, 혹은 이 대사는 위로가 되는 여운을 남긴다. 넘어지겠으나 일어날 것이고, 또 넘어지겠으나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인생에서 넘어지는 일이란 마냥 스케이트 타는 것과 같지만은 않아서 어떤 좌절은 그것 자체로 한 사람의 인생 전부를 전복시켜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잘못 전해진 위로는 때로 욕설이 되기도 한다. 아주 넘어져 영영 못 일어나게 된 사람에게, 혹은 그런 느낌인 사람에게 스케이트 운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농담도 마찬가지다. 분위기를 좋게 만든다고 던진 농담이 어떤 사람에게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오래전에 어떤 나라의 외교관과 나눴던 대화가 있다. 교민들에 대한 화제에 이르렀을 때, 당신네 나라로 이주한 이민자들을 언제 자국 사람으로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느냐라고 물어봤었다. 영주권을 땄을 때, 시민권을 땄을 때. 그것도 아니라면 언제일까.  

외교관답게 신중하게 대답을 골라서 했는데, 자기네 나라의 농담을 이해하고 함께 웃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이 진짜 자기네 사람이 다 되었다고 여기게 된다는 거였다. 농담이란 그 나라의 역사, 그 사회의 문화, 그 이웃의 삶에 완전히 녹아들어가는 순간 마침내 확보할 수 있는 공감의 영역이라는 뜻일 터였다. 같은 순간에 웃고, 같은 순간에 화를 낼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자체로 이미 내 이웃이고, 내 친구이고, 내 편일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기분 좋은 농담이 하나 있다. 해외에서 북쪽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에 딸아이와 함께 갔을 때였다. 식탁 앞에 앉아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북쪽 분이신 종업원이 우리가 모녀 사이냐고 묻고는 이어 말했다. 똑떨어지는 북쪽 사투리로. “아니, 딸을 열다섯 살에 낳았습네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 기분이 좋았을 리는 없다. 그렇게 말해주는 센스가 너무나 유쾌했을 뿐이다. 다짜고짜 젊어 보인다거나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고 하는 말은 믿어지지도 않고, 믿어지지 않으니 딱히 기분이 좋은 말도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애둘러 하는 말이라니. 북쪽 사람들이 하는 식당에 가는 것이 좀 꺼려지던 시기, 혹시 법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던 시기,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농담 한마디로 인해 무장해제, 음식 맛까지 좋아졌다.

잘못된 농담들도 있다. 일이 없어서 당장 다음달 생활비를 걱정하고 있을 때, 요즘 신수가 훤해 보인다는 말, 사람은 한가하고 볼 일이라는 말, 자기는 바빠서 죽을 맛이라는 말 같은 것. 너무 아파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 무슨 다이어트를 했느냐는 말, 몸매가 아주 좋아졌다는 말. 나는 이제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구나 우울해지고 있는 참인데, 늙어서 좋은 것들에 대한 쓸데없는 말들. 잔뜩 기대를 하고 영화관에 가고 있는데 반전이 있는 결말을 냉큼 말해버리는 사람들. 말하자면 공감이 없는 말들. 내가 친해서 하는 말인데 말이지 하면서 자기만 생각하는 말들. 전해지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입에서 나오는 것만 생각하는 말들. 공감이 없으니 그저 말뿐인 말들.


친해서 하는 말인데…하면서

자기만을 생각하는 말들

마음으로 전해지는 말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어낸 말들

공감이 없으니 그저 말뿐인 말들


말은 매번 신중하게 골라서 해야 하는 것이지만, 또 매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선택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행히 실수는 덮어지기도 한다. 맥락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공감이란 사실 그 맥락 속에 있고, 그 맥락이 말을 덮거나 살린다. 맥락도 없고 공감도 없는 말은 본인에게는 재앙이고, 타인에게는 폭력이다.

공감이란 게 사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지 모른다. 보편적인 것, 상식적인 것에 대한 이해.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그리고 겸손함. 아주 많은 겸손함.  

적어도 공인이라면 그리 해야 할 일이다. 좋은 정치인이라면 ‘말’을 스케이트 타기처럼 “한번 넘어지면 또 일어나면 되지”, 그렇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절대로 안될 일이다. 공인이, 정치인이 한번 꽈당하는 소리에 빙판이 깨지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친다. 내 실수도 아닌데 다친다. 너무 깊이 다친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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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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