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사회과학은 긴밀히 연관돼 있다. 인문학 가운데 철학과 역사학은 정치학·경제학·사회학 등 사회과학의 기초를 이뤄왔다. 그러면 문학은 사회과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문학 가운데 사회과학에 영감과 통찰을 안겨준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1984>를 들고 싶다. 특히 <1984>는 사회학·정치학·신문방송학 등에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오웰은 이 소설에서 당대 현실을 해부한다. 그가 겨냥한 것은 파시즘과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 비판이다. 둘째, 오웰은 미래 사회를 전망한다. 그가 우려한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감시사회로서의 미래다. 오웰이 예견한 것은 디스토피아 세계다. 권력에 의한 감시와 통제라는 우울하고 섬뜩한 오웰의 경고는 정보사회에 대한 선구적인 통찰을 이뤄왔다. 널리 알려졌듯 <1984>는 초고가 쓰인 1948년의 ‘48’을 ‘84’로 바꾼 것이다. 이 초고가 1949년 6월8일 세상에 나왔으니 지난 토요일은 <1984> 출간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서구 사회에서 오웰의 <1984>가 누린 명성은 앞선 세대의 고전들에 필적했다. 2009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주요 언론사와 대형 도서관의 추천도서 목록 및 관련 기록을 토대로 뽑은 ‘역대 세계 최고의 100대 명저’에서 <1984>는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세기 전반을 대표했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3위를 기록했다. <1984>는 2007년 일간지 가디언에 의해 ‘20세기를 가장 잘 정의한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4>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소설의 제목인 1984년에 치러진 지구적 이벤트였다. 1984년 1월1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미국과 유럽을 인공위성으로 연결한 텔레비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선보였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이 ‘빅브러더’의 대중 통제와 조작의 수단이 될 것이라는 오웰의 전망에 이의를 제기했다. 백남준이 주목한 것은 소통을 위한 매체로서의 텔레비전의 기여였다. 텔레비전의 역할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의 경우 소통의 자유라는 긍정적 측면보다 대중의 통제라는 부정적 측면이 더 크게 보이니 백남준보다는 오웰의 견해에 더 가까운 셈이다.

<1984>가 지난 70년 동안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아우르며 미쳤던 가장 중요한 영향은 감시사회로서의 현대사회의 그늘에 대한 성찰적 계몽에 있었다.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나라 오세아니아는 텔레스크린·사상경찰·마이크로폰 등을 이용해 개인의 생활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한다. 이 감시와 통제를 위해 오웰이 내세우는 허구적 존재가 빅브러더다. 빅브러더는 사회이론가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분석한 일망감시체제인 ‘파놉티콘’(원형 감옥)과 닮아 있고, 오늘날 우리 일상이 속속들이 기록돼 있는 ‘빅데이터’를 떠올리게 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1984>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당의 슬로건이다. 당은 과거의 기억을 통제하고 조작하며, 이를 바탕으로 미래 사회에 대한 항구적 감시 체제를 완성한다. 감시 체제는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분석하듯 자본주의·산업주의·군사적 힘과 함께 현대성을 이루는 한 요소이자, 정보사회의 도래와 진전으로 더욱 강화돼온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한 그늘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오웰의 비관적인 전망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지금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1984>의 텔레스크린·사상경찰·마이크로폰 등에 대응하는 오늘날의 신용카드·e메일·휴대전화·폐쇄회로(CC)TV·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은 인간의 자유를 확장시킨 것인가, 구속시킨 것인가. 둘 다 옳다는 절충적 관점에서 우리 인류는 정보사회의 진전이 가져온 ‘자유의 확장’과 함께 그 기술적 전체주의가 낳아온 ‘자유의 구속’이 공존하는 ‘이중 사회’의 그물망 속에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오늘날 시민 다수의 사생활을 이제 국가와 기업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추적하고 감시하며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웰이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이러한 권력에 대한 일관된, 그리고 성찰적인 비판이었다. 빅데이터, 가짜뉴스, 포퓰리즘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우리 시대에 <1984>는 현재진행형이다. <1984> 출간 70년을 맞이하여 조지 오웰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싶은 이유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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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