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부하는 사회학은 ‘제3의 사회과학’이라 불린다. 근대 사회과학의 역사에서 정치학, 경제학에 이어 세 번째로 체계화됐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정치·경제를 제외한 계급·조직·세대·문화 등을 연구 영역으로 삼는다. 동시에 사회학이 다른 사회과학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정치, 경제, 문화를 포괄하는 전체사회를 분석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정치학, 경제학과 비교해 사회학이 때때로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사회학의 이런 태생적 특징에서 기인한다.

사회 전체의 변화를 조망하는 게 사회학의 과제라면, 사회학의 시각에서는 2010년대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몇 달 남아 있지 않은 이 2010년대를 후대의 역사가들은 예상하건대 대침체 이후 암중모색기였다고 부를 가능성이 높다. 대침체란 2008년 금융위기를 지칭한다. 금융위기가 1980년대 이후 공고화된 신자유주의 질서를 해체시키기 시작한 이래, 특히 서구사회에서 지난 10년은 새로운 질서로 가는 변화와 혁신, 그리고 그 이면을 이루는 불안과 분노가 혼돈스럽게 뒤엉켜 있는 시대였다.

이 두 흐름 가운데 먼저 사회학자들의 시선을 끈 것은 불안과 분노였다. 불안과 분노의 감정을 선구적으로 포착한 이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었다. 21세기에 들어와 이론가에서 예언가로 자신의 지적 역할을 바꾼 듯한 바우만은 2006년 내놓은 <유동하는 공포>에서 진단하기를, 전통적인 복지국가를 대신하여 이제 “소아성욕자, 이상행동자, 연쇄살인마, 강압적인 거지, 강도, 스토커, 부랑자, 유해 음식물 판매자, 테러리스트 등이 주는 위협 쪽으로 주된 관심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 불안과 공포는 이민자를 위시한 ‘내부의 적’에 대한 분노를 촉발시켰고, 이는 지난 10년 우파 포퓰리즘 발흥의 정치적 토양을 제공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불안감이 과학기술 및 경제의 변화와 혁신에서도 비롯된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그리고 디지털경제, 공유경제, 플랫폼 비즈니스가 부상하면서 경제적 구조변동이 빠르게 진행돼 왔고, 특히 기성세대의 경우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고 대처하는 데 작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정보경제학자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가 2014년 펴낸 <제2의 기계 시대>에서 강조하듯, 과학기술 변화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결과를 안겨주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이 미숙련 일자리를 대체하고, 자본이 노동보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며,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부를 독점하는 정보혁명시대의 도래에 우려와 불안과 두려움의 시선을 거두긴 어렵다.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 ‘정체성 정치’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사유·감정·이념을 뜻한다. 불안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불안을 벗어나려는 욕구를 갖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바로 이 불안에 맞서서 존재의 이유를 알려주고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곧 정체성이다. 국제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지난해 출간한 <정체성: 존엄성의 요구와 분노의 정치학>에서 이러한 정체성이 최근 정치변동을 독해할 ‘마스터 개념’이라고 파악한다. 종교, 인종, 민족, 그리고 젠더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들이 훼손되는 현실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정체성 정치가 기성 근대정치를 대체하고 있다.

요컨대, 위험사회에 맞선 안전사회에 대한 요구, 가속화하는 정보혁명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정체성 정치의 부상이 2010년대를 이뤄온 서구적 풍경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회학 연구자로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런 서구적 현실과 한국적 현실 사이의 거리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3050클럽’에 가입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서구사회와 한국사회 간의 사회구조적 차이는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구적 보편성 아래서 불안사회, 정보혁명, 정체성 정치의 한국적 특수성이 표출되고 있는 게 2019년 우리 사회의 현재일 것이다.

이제 머잖아 열릴 2020년대에는 우리 삶을 둘러싸고 규정하는 변화의 속도가 더욱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이 배가하는 속도 안에서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공존하는 가운데, 과거에 대해 애틋한 향수를 품는 레트로토피아도 펼쳐질 것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공상과학(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다. 불확실하고 질주하는 미래를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선 자리와 갈 길을 학습하고 그 지도를 그려보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땅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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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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