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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의 이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위험사회란 위험이 사회의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를 말한다. 벡은 위험사회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위험은 전염성이 강하다. 둘째, 위험은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셋째, 과학의 발전에 비례해 위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 넷째, ‘안전’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중요해진다. 다섯째, 시민들의 불안이 증가함에 따라 안전은 물이나 전기처럼 공적으로 생산되는 소비재가 된다.

위험사회론이 이전 시대보다 현대사회가 더 위험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벡이 전하려는 것은 우리 인류가 직면한 위험의 현재적 성격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이다. 현대사회 이전의 오래된 위험은 자연재해와 전쟁 등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새로운 위험은 과학기술에 기반한 사회발전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지구적 기후 위기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이 위험사회의 구체적 사례들이다. 벡이 강조하려는 건 현대화가 가져온 우리 삶의 사회적 조건 변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적극적 대응이다.

문제작 <위험사회>가 발표된 것은 1986년이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후반 벡은 <글로벌 위험사회> 영어본과 독어본을 내놓았다. 이제 위험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벡이 주목하는 세 가지 글로벌 위험은 기후 변화와 같은 생태적 위험,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적 위험, 자살폭탄과 같은 테러의 위험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인류가 직면했던 9·11테러, 금융위기, 기후 위기를 지켜볼 때 벡의 글로벌 위험사회론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독자들은 내가 왜 위험사회론을 꺼냈는지를 눈치챘을 것이다. 글로벌 위험사회란 위험이 세계화된 사회다. 올해 들어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공포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질병 또한 빠른 속도로 세계화되고 있다.

전염병이 원전이나 기후위기처럼 새로운 위험은 아니다. 중세 시대의 가장 큰 재앙 중 하나였던 페스트는 오래된 위험이다. 그러나 도시화, 교통수단 혁신, 과학기술 발전, 그리고 이런 변동으로 인한 ‘사회적 밀도’, 즉 사회적 관계의 양과 질의 증가는 오래된 위험 또한 세계화시켜 왔다. 세계를 공포로 몬 지난 20세기 초반의 스페인독감이나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질병의 세계화가 갖는 위험과 위력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이제 위험은 지구 도처에 널려 있다. 그리고 ‘지구촌’이란 말이 있듯, 우리 인류에게 ‘위험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실이 위험의 세계화에 따른 ‘공포의 세계화’를 강화시킨다. 특히 전염병의 세계화는 우리 건강과 생명에 직결돼 있는 만큼 그 으스스한 공포가 예고 없이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다. 더하여 주목할 것은, 오래된 위험이든 새로운 위험이든 이 위험이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점이다. 노인, 아동과 같은 사회적 약자는 위험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위험사회가 가져오는 ‘위험의 불평등’ 현상이다.

위험의 세계화에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위험이 일어나자마자 즉각 그 사실을 국민과 다른 국가들에 알려야 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태에서 볼 수 있듯,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정보의 전달이 늦어질수록 그 위험은 증폭된다. 위험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일은 국민과 다른 국가들에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중국 정부의 소극적 초기 대처는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둘째, 위험의 세계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국제적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 위험사회의 대응에서는 사전 예방과 사후 대처가 모두 중요하다. 위험이 세계화된 만큼 지구적 차원의 사전 예방 및 사후 대처를 위해 각종 국제기구들과 개별 국가 간 협력을 통한 거버넌스 강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벡이 지적하듯, 글로벌 위험사회에 공동으로 맞서는 ‘세계시민주의’의 상상력과 실천은 21세기 미래에서 더없이 중대한 과제다.

문명의 21세기에 예기치 않은 전염병의 발생과 잇단 도시 봉쇄,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위험의 세계화는 우리 인류가 안고 가야 할 묵시론적 미래 풍경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이 묵시론적 공포에 맞설 수 있는 최고의 힘은 역시 이성이다. 정직하고 신속한, 그리고 체계적이고 협력적인 대응이라는 이성의 힘을 나는 여전히 신뢰하고 싶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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