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천이 북으로 흐르다 본류인 동진강과 합류하기 전 왼편 너른 들녘에 기껏해야 해발 20m도 되지 않는 야트막한 산이 자리하고 그 산 가장자리 양지 바른 곳을 골라 옹기종기 초가집들이 들어선 곳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에 전기는 물론 수돗물도 들어오지 않으니 사람들은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독을 채우고서야 밥도 짓고 국도 끓일 수 있었다. 쌀은 부족함이 없었지만 과일이나 해산물은 소산이 아니어서 귀한 물품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은 삼동(三冬) 즈음엔 겨울나기 김장김치와 젓갈이 주된 반찬이었다. 이렇게 하루 세 끼를 먹고 내가 만들어 낸 에너지양은 하루 2000Cal 정도가 채 안되었을 것이다. 매일 어른들이 그 정도 열량에 해당하는 음식을 먹는다고 영양학자들이 제시한 양이다. 일찍이 물리학자들은 에너지의 형태는 변화하되 그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에너지 불변의 법칙을 발견했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지닌 운동에너지는 아래쪽 바윗돌을 굴리는 운동에너지로, 미약하게나마 땅을 데우는 운동에너지로, 지축을 흔드는 소리에너지 따위로 변한다. 형태가 변하듯 에너지 단위도 서로 변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열량은 일에너지 혹은 전기에너지 단위로도 바꿀 수 있다. 그러므로 2000Cal 섭취하는 인간은 얼추 100W 백열등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전구를 하루 종일 켜놓을 만큼의 전기에너지가 평균적인 인간이 하루에 쓰는 에너지의 양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 부모들은 아마 이 정도의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당시 우리 집에 뭔가 생소한 형태의 에너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라디오에 붙어 있던 커다란 건전지 정도였다. 호롱불에 담긴 한 줌 석유를 더 꼽으라면 꼽을까? 하지만 간접적으로 사용된 에너지를 따지면 속내는 더욱 복잡해진다. 부엌에서 쓰는 성냥은 성냥공장에서 만든 것을 읍내 장터에서 사온 것이지만 거기에 얼마의 사회적 에너지가 들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다. 대장간에서 벼른 쟁기 보습의 재료인 철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인류는 이렇듯 한 개인의 생물학적 에너지양을 쉽게 초과하는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하고 도시와 국가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오늘날에는 그 관계망이 더욱 복잡해져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에너지의 흐름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카네이션 한 송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물의 총량(흔히 물 발자국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돼지 삼겹살은 이역만리 어느 대륙의 낯선 항구에서 화물선을 타고 우리 집 냉장고에 들어왔는지 알아차리기 힘들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제각기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뉴스를 보거나 축구경기를 관람한다. 이 모든 행위가 많은 에너지 소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듯 경제성과 문화적 특수성을 반영한 사회적 관계망의 크기가 결국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에너지 총량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서구 생활양식을 수용한 한국의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9위다. 숫자로 표현하면 그 양은 1만W에 육박할 것이다. 미국이 1만1000W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 값은 생물학적 대사율의 거의 100배에 해당한다. 사회적 관계망의 크기에 비례한 이런 총 에너지양을 사회적 대사율(metabolic rate)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어쨌든 구석기 시대에 돌도끼를 들고 사냥을 하며 하루를 곤고히 보냈던 우리 조상들의 사회적 대사율은 아마 100W도 못 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밤을 환히 밝힌 대도시의 현대인들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전기에너지의 형태로 많은 양의 자원을 소모한다. 밤을 밝히든 아니면 방을 덥히든 그 전기에너지는 대부분 석유 혹은 석탄에서 온다. 석탄이나 석유의 모습을 보고 거기에서 과거 한때 지구상에 살았던 식물이나 조류(algae)의 흔적을 찾아내기는 힘들겠지만 우리는 많은 양의 석탄이 약 3억년 전 석탄기에 늪에 쓰러진 식물의 흔적이라고 배웠다. 뉴캐슬대학의 지질학자인 주디 베일리는 석탄이 만들어지는 데 수백만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석탄은 지하 3~4㎞에서 구워진 숯이다. 지각 아래로 1㎞ 내려갈 때마다 온도는 섭씨 30도씩 올라간다. 산에 오를 때 100m당 약 0.6도씩 떨어지는 것과 정반대 현상이다. 바위와 흙이 내리누르는 100도가 넘는 장소에서 휘발성 물질이 빠져나가 압축된 나무가 곧 고도로 농축된 탄소인 석탄인 것이다.

지금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이렇듯 오랜 시간에 걸친 지구화학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자원이다. 다시 말하면 석탄과 석유는 아직 연소되지 않은 광합성의 역사적 산물이다. 이들 광합성 산물을 태워 에너지를 얻게 된 200여년 전의 사건을 우리는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산업혁명은 곧 땅속에 묻힌 이산화탄소의 족쇄를 푼 사건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산업혁명의 대열에 동참한 지구인들의 숫자도 엄청나게 늘었다. 내가 태어날 즈음에 30억명을 넘어섰던 세계 인구는 1999년 60억명을 넘었고 지금은 76억명 정도다. 인구 증가와 더불어 인류의 평균 사회적 대사율 또한 점점 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의 미래는 행복할까? 과학자들은 약 1시간 동안 지구 전체에 쏟아지는 태양에너지가 전체 인류가 1년 동안 쓰는 총 에너지양과 맞먹는다고 추산한다. 그러므로 순전히 딱 한 가지 전제조건만 충족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바로 고효율로 햇볕을 에너지로 바꾸는 일이다.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대사율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과도하게 소비하는 에너지 대부분은 지구의 내부에서 유래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그것은 과거의 태양에너지가 오랜 기간에 걸쳐 지구화한 물질이다. 마치 축시법(縮時法)을 쓰듯 인류는 과거의 시간을 끌어다 빠르게 소비하고 있다. 이제 인류에게는 단 하나의 혁명이 남았다. 그것은 바로 ‘지구의 밖’인 태양에서 거저 쏟아지는 저 핵융합 에너지를 실시간 에너지로 바꾸는 일이다. 4차 산업혁명에 어떤 실체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태양에서 지구로 오는 에너지에 관한 도전이 될 것이다. 오늘도 둔덕 솔가리에 넉넉한 햇볕이 내려앉는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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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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