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동 내내 간직해 온 열매가 아직도 붉은데 다시 새봄을 맞은 산수유는 꽃망울을 틔워냈다. 봄이다. 무채색의 칙칙함을 한방에 날려버리듯 봄꽃은 밝고 화려하다. 곧 벚꽃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도 필 것이다. 남들보다 서둘러 꽃을 피우면 비록 적은 양의 꿀을 제공하더라도  꽃가루를 실어 나를 벌들이 찾아들 것이기에 산수유가 저런 전략을 취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잎 없이 열린 공간으로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서발막대 거칠 것 없이 날아갈 수 있다는 점도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꽃은 대표적인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식물은 몇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생식에 필요한 에너지를 조달한다. 첫 번째는 잎에서 광합성을 진행하는 방법이다. 이는 잎에서 만든 탄수화물로 꽃을 피우고 매개 동물을 유인할 꿀을 만드는 일이며 많은 수의 식물이 취하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두 번째는 생식에 들이는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지난해 저장해 두었던 탄수화물을 꽃 피우는 데 사용하는 산수유나 벚꽃이 이런 전략을 쓴다. 마지막은 생식기관이 직접 광합성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꽃은 광합성에 참여한다.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이 푸른색을 띤 꽃받침일 것이다. 꽃이 지고 열매가 익어갈 때까지 꽃받침은 적극적으로 광합성에 참여하기도 한다. 최근 나는 감을 보관하는 방법에 대해 기술한 호주 농림부의 출판물을 읽다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감의 초록색 꽃받침 네 개를 하나씩 떼 가면서 감의 크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측정한 연구 결과였다. 놀랍게도 네 개 꽃받침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감의 크기가 제일 컸고 꽃받침 수가 줄어들면서 감의 크기는 비례적으로 작아졌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꽃받침 말고 꽃잎, 암술 혹은 수술대와 같은 꽃의 생식 부위에서도 광합성이 진행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식물의 거의 모든 기관이 많든 적든 탄소를 고정하는 광합성 작업에 나서는 걸 알 수 있다. 익기 전의 과일이나 일년생 풀의 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맹그로브라는 식물은 뿌리로도 광합성을 한다. 물론 이파리에 비해 그 효율은 떨어진다. 하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밀의 쭉정이는 단위 면적당 광합성 효율이 잎의 75%에 이르기도 한다. 이삭의 수를 감안하면 이는 쉽사리 무시하지 못할 양이다.

광합성 전문 기관인 잎은 기공이라는 구멍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인다. 지금처럼 인간의 활동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수치가 증가하면 식물은 그 사실을 금방 알아채고 기공의 입구를 좁히거나 그 수를 줄임으로써 광합성 원자재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중국과 영국의 과학자들은 1924년과 1998년에 채취한 은행나무 잎에서 기공의 수가 각각 134개에서 97개로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 식물학 잡지에 발표했다. 잎 뒷면에 있는 기공의 숫자를 세면 식물이 살았던 당시 대기 중에 존재했던 이산화탄소의 양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식물은 대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탄수화물의 재료인 이산화탄소를 확보할 수 있다. 

식물도 동물과 다름없이 자신이 만든 포도당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얻고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 따라서 광합성을 하지 않는 온대 지방의 겨울이나 빛이 없는 깜깜한 밤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약간 증가한다. 전문 광합성 기관이 아닌 줄기나 과일 혹은 꽃받침은 자신들의 날숨에 포함된 이산화탄소의 일부를 여투어 다시 쓰면서 광합성을 수행한다. 이렇게 식물은 따로 기공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이산화탄소 경제를 운영해 나간다. 

동물이나 대부분의 세균은 갖지 못한 엽록체를 구비한 식물이나 조류가 이 행성에서 진행하는 광합성 과정은 실로 지구 전체를 먹여 살린다. 행성의 바깥에서 도달한 한 방향의 태양에너지를 지구 생명체가 포획하는 유일한 방법이 광합성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부의 에너지를 지구 안으로 들여오는 통로로서 광합성 생명체들은 든든한 곡물 창고인 셈이지만 실제 이들은 지구에 도달하는 전체 태양에너지의 1%도 채 사용하지 못한다. 이 정도만으로도 식물의 생물량은 지구 전체 생명체의 80%에 육박한다. 2018년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와 미국의 칼텍 연구진은 지구에 사는 생명체 전체의 탄소 무게가 5500억t이고 그중 식물의 무게가 4500억t에 이른다고 추정했고 그 연구 결과를 미 국립과학원 회보에 발표했다. 이 수치는 우리 인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 세계 인구는 약 12년마다 10억명씩 늘고 있지만 인간의 주요 곡물인 밀과 쌀 생산량이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은 태양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가까운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식물의 경제 방식을 배우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인류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식물이 잎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을 최대한 이용하여 대기권 혹은 자신의 날숨 속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를 영양소로 변환시키는 과정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인간이 작물화에 성공한 밀과 쌀 같은 곡물의 쭉정이조차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은 경탄할 만하다. 식물의 이런 기예를 보고 있으면 생명의 역사에 기여한 인간의 발명품이 알코올을 농축시키거나 끓는점에 따라 석유를 분류하는 ‘증류’ 또는 ‘바퀴’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마저 든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이 광합성에 참여하는 분자 기구나 유전적 기초를 비로소 눈치채기 시작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엽록소를 동물의 세포에 이식하든, 식물의 잎이나 뿌리를 흉내 낸 로봇을 제작하든 인류의 운명은 앞으로도 거의 수십억년 동안 무상으로 제공될 가능성이 큰 저 태양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올해도 여전히 봄은 꽃으로 그득하겠지만 이젠 그 꽃받침에 내려앉는 태양빛마저도 눈여겨보게 된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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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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