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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탐사 이틀째 타이거 네스트 일대를 둘러보았습니다. 놀랍게도 한반도의 것과 같은 종들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가끔 산에 가는 게 아니라 잠깐 산에서 내려오는 듯, 항상 현장을 지키는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의 현진오 소장이 이번 여름에는 부탄으로 꽃산행을 떠난 모양이다. 현 소장이 보낸 생생한 사진 중에 어릴 적 우리 동네 뒷산에서 참 많이 따먹은 보리수 열매가 있다. 부탄과 거창의 열매는 형제처럼 아주 닮았다. 모양과 크기는 물론 설탕 같은 분가루가 햇빛에 반짝이는 표면까지!

우리 고향에서 ‘뻐리똥’이라고 부른 그 열매를 보면서 나의 생각은 시골 뒷산을 거슬러 올라 퍽 희한한 상상에 이르렀다. 정상에서의 한 걸음은 한 고장에 해당한다. 지구가 넓고 둥글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건 땅속 깊숙한 어딘가에 산꼭대기처럼 수렴되는 곳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높은 곳을 향하여 낑낑거리며 올라가듯 뿌리는 그곳을 향하여 깊이깊이, 아니 높게높게 올라간다. 비탈에서도 꼿꼿하게 자라는 나무가 위로 올라가듯 지하의 뿌리도 그 중심을 향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뻗어나간다. 그러니 지하의 뿌리가 한 갈래를 삐끗하면 국경쯤이야 쉽게 넘지 않을까. 현 소장의 글은 계속 이어진다. “특히 진도 해남 신안 바닷가 초지에 자라는 끈끈이귀개를 히말라야 고산에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끈끈이귀개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귀하고 특별한 식물이다. 제자리에 앉아서 곤충을 사냥하는 벌레잡이 식물이다. 꼿꼿하게 서는 줄기에 반달 모양의 잎이 나고 팍, 느낌표처럼 터지는 샘털이 있다. 철모르는 곤충들이 공중의 꿀물 오아시스인 줄 알고 덤비지만 그게 실은 끈적끈적한 점액질인 것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모두 둥근 세상에 맞물려 돌아가는 중인가. 나는 진도의 어느 산기슭에서 재작년 어렵게 끈끈이귀개를 보았다. 그 옆에 혹 개미가 파놓은 구멍이 있었던가. 다시 가 본다면 그 대롱 같은 구멍이 혹 히말라야의 한 모퉁이로 연결되지 않을까. 자세히 관찰해 보아야겠다. 끈끈이귀개, 끈끈이귀개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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