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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세상의 온갖 곤고함이 다 이르러 흉하게 쇠하였으니, 원통하고 분하여 얼음을 품에 안은 듯하고 근심스럽고 두려워 창자에 바퀴가 구르는 듯하다. 평생 도를 배우고도 죄목은 의리를 어긴 소인이고, 태평성대를 만나고도 신세는 변방에 유배된 외로운 신하다. 아침저녁으로 먹을 것을 걱정하니 머리털 난 중이요, 수염 난 아녀자다. 보름마다 점고 받으니 사로잡힌 죄수요, 열병하는 병사다. 촌구석 훈장 노릇이나 하며 아이들의 우두머리로 불리고 있다.

1802년 10월21일 심노숭이 쓴 일기다. 그는 유배형에 처한 상황에서 20책 분량의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5년4개월 동안 일기를 빠뜨린 날이 열흘도 채 되지 않는다. 다양한 내용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유배 생활의 어려움 가운데 감정 조절을 잘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 때로는 적나라한 욕정의 고백까지 솔직하게 서술하였다. 심노숭은 이 외에도 여러 편의 일록과 실기, 심지어 편년체 연보로까지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심노숭만큼은 아니더라도 조선의 많은 문인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자 했다. 사후에 누군가에 의해 기록될 묘지명, 행장 등에는 미화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남기겠다는 뜻을 밝힌 이들도 있고, 자기 삶에 대한 변명 혹은 명예 회복의 수단으로 기록에 매달린 이들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기록하는 순간 나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주어진다는 면에서, 일기는 성찰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오늘 우리는 읽고 쓰는 일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마트폰에 지배당하는 시간 내내 우리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신하고 발신한다. 단순 접속이나 열람이든 짧은 게시나 댓글이든 차곡차곡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 가운데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우리의 삶이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세밀하게 정보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기록하지 않아도 내 삶이 기록되는 세상이다. 성찰 없이 소비되는 시간들 속에서 나를 보는 눈을 남에게만 내어준다면, 우리가 누리고 있다고 여기는 자유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다. 지금 나의 눈으로 기록할 나는 누구인가.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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