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스승의날이다. 기념일이 많은 5월은 으레 주변을 돌아보는 달이다. 기념일 때문에 지출이 크기도 하지만, 고마워할 사람이 있다는 게, 그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념일을 핑계로 “고마워요”나 “미안해요” 같은 고백과 “행복하세요”나 “건강하세요”와 같은 바람을 수줍게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는 데 꼭 필요한 말인데도 저 말들을 할 때면 오스스 소름이 돋는 이유는 무엇일까. 슬프게도 지금껏 어떤 스승도 그 이유를 알려준 적이 없다. 어떤 것은 살면서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스승의날이 다가오면 마음이 무거웠다. 평소 연락을 드리지 않다가 기념일을 핑계로 전화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게다가 “선생님, 스승의날이라 연락드렸습니다” 같은 말을 뻔뻔하게 건넬 만큼의 내공도 없다. 그마저도 몇 년 전부터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지레 겁을 먹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다. 전화기를 쥔 손은 파들파들 떨린다. 머리는 연신 조아린 채다. 스승들은 나를 혼내지 않을 것이다. 외려 기운을 북돋워주실 것이다. 그런데도 전화를 걸기 전부터 나는 말을 더듬고 있다.

스승은 대화의 맥이 끊길 때쯤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잘 지내지?”나 “건강하지?”와 같은 심상한 질문을. 심상한 질문인데 내게 그것은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뜨끔해서 그렇다. 내가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승이 간파한 것 같아서, 건강을 뒷전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나를 들킨 것 같아서. “잘 지내야지요”나 “건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와 같은 대답으로 국면 전환을 해야 하는데, 이미 나는 얼어붙었다. 정곡을 찔린 나를 떠올리며 수화기 저편에서 스승은 웃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김병익 선생님의 산문선 <인연 없는 것들과의 인연>(이른비, 2019)을 읽었다. 매 글 뒤에는 추신이 덧붙어 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것을 여기로 다시 소환하는 일, 지금에 와서 옛 기억을 애타게 더듬는 일일 것이다. “무연한 것들에 대한 나의 기억이여, 앞으로 남은 것보다 지난 기억이 훨씬 많아진 나는 이제 그것들에, 따뜻한 안녕의 인사를 보낸다.” 이 문장 앞에서 나는 겸허해진다. 무연한 것, 그러니까 아무 인연이 없는 것에게 나 또한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닿은 존재와 무연한 존재를 그러모으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스승의날 하루가 모자랄 것이다. 옆에서 나를 자극하는 존재를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곁을 살펴야 한다는 엄마의 말씀, 힘들 때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아빠의 말씀이 떠오른다. 무연하기에 진한 여운을 남긴 존재도 있다. 어떤 산책길은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길을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다 갖게 해주었다. 지난 기억과 앞으로 남은 것의 무게가 수평을 이루는 순간을 떠올리니 아찔하다. 나이를 먹어도 스승은 필요할 것이다.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주는 사람’을 뜻한다. 가르치는 현장에 꼭 교단과 칠판이 있을 필요는 없다. 이끌어주는 일이 꼭 우물 앞까지 함께 가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자기’다. 나를 가운데에 두고 바라봐야 ‘예전의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존재가 보인다. 앞으로도 무수한 사람이 나를 스쳐갈 것이다. 그보다 더 무수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어떤 순간은 한참 뒤에야 뾰족한 섬광처럼 다가올 것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스승으로 인해 ‘나중의 나’는 조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궁금해하는 사람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궁금함을 주변에 나누는 사람들이 내게는 모두 스승이다. 궁금함을 유발하는 생물과 무생물 또한 스승이다. 궁금해함으로써 삶의 실마리가 생기고 내일의 이유가 좀 더 분명해진다. 나의 스승은 도처에 있다. 그들 모두에게, 하나하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여기에서 거기로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나는 오늘을 잊지 않으리라. 여기를 똑똑히 기억하리라.

무수한 스승들 덕에 이 글을 쓸 수 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 손을 뻗어도 가닿을 수 있는 범위는 정해져 있다. 허나 손끝의 굳은살은 지금 이 순간의 밀도를 기억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좀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스승의 가르침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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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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