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쏟아지는 조명과 광활한 축구장을 가득 채운 함성. 뜨거운 공기 속을 유영하는 카메라는 출전을 앞두고 있는 선수들을 비추고, 그들 사이로 잔뜩 긴장한 플레이어 에스코트의 얼굴이 보인다. 경기장까지 선수를 배웅한 에스코트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몸을 돌려 빠져나오려 한다. 그때, 그의 손을 끌어당기며 11번 선수가 말한다. “아직 안 끝났어.” 이때부터 한 소녀의 FIFA 월드컵 모험이 시작된다. 

지난 7월8일 폐막한 2019년 프랑스 여자 월드컵을 기념해 나이키가 내놓은 광고 ‘그 이상을 꿈꿔라(Dream Further)’의 내용이다. 여기에 등장한 10대 축구선수 마케나 쿡은 구릿빛 피부를 빛내며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는 에스코트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광고는 축구 꿈나무가 이름 있는 선수들, 그리고 심판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쿡의 짧은 환상이었던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지금 그라운드를 뛰는 선배의 모습이 이후 후배의 커리어를 견인하는 힘이 될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광고의 끝에 쿡은 자신이 에스코트하는 선수에게 자신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묻는다. “준비 됐죠?”

“너 자신이 되어라”거나 “당신의 가능성을 믿는다”라던 나이키는 이제 세대를 이어가며 쌓이는 여자들의 역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과연 ‘나이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이키는 성차별적인 스폰서 정책과 고용차별로 문제가 되고 있다. 

2019년 5월, 미국 육상 선수인 앨리손 펠릭스를 비롯한 3명의 선수는 임신 때문에 나이키로부터 계약상 불이익을 당했다고 밝혔다. 펠릭스는 이렇게 말한다. “임신은 프로 선수의 경력 중 일부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이를 위해 싸우지 않아도 되는 날을 꿈꾼다.” 출산 후 경기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후원금을 삭감하는 것은 편견에 따른 차별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나이키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고발자들에 따르면 나이키는 동일임금법을 위반하고,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다. 가해자를 승진시키고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의 관리를 받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여성의 지위와 평등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나이키의 광고 메시지와는 사뭇 다른 결정들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나이키는 기본적으로 가부장제적 성별분업에 기대고 있는 기업이다. 여성학자 신시아 인로는 나이키가 여성이 경제적으로 가장 소외된 나라를 아웃소싱 국가로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나이키는 여성의 입지가 취약한 나라에 스웨트숍(SWEATSHOP·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면서 노동하는 작업장)을 세우고 이를 이용해 노동력을 착취했다. 

인로에 따르면 과거 한국에 나이키 스웨트숍이 들어섰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군부독재가 노동조합을 억압하는 데 열심이었고, 둘째 “열심히 일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여성의 도덕’으로 여겨지는 문화 덕분에 여성 노동자를 쉽게 부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런 착취 산업은 상황이 더 안 좋은 나라들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후였다. 이런 이동이 일어나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중반은 나이키가 친여성적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아시아 지역 스웨트숍에 대한 비판이 나이키의 이미지를 잠식하는 시점이었던 셈이다.

나이키 페미니즘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광고의 상상력은 여성뿐만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의 가능성을 해방시키고 그 운신의 폭을 넓힐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삶은 뭉개면서 그의 지갑만을 찬양할 때, 여성은 ‘부당한 대우와 착취-시발비용 탕진-부당한 대우와 착취’ 같은 악순환의 고리에 갇힐지도 모른다. 물론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 값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착취당하는 스웨트숍 노동자의 현실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우리가 소비자로서뿐만 아니라 노동자로서 말하고 움직일 때에야 비로소, 나이키 페미니즘을 발판으로 현실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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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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