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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

낙우송

경향 신문 2019. 3. 12. 15:22

김밥처럼 긴 기차를 타고 가다가 옆구리를 열고 내리니 신경주역이다. 이곳은 언제나 다른 역보다도 곱절의 묵직한 기분이 어깨를 두드린다. 천년도시와 가깝기도 하지만 역사 바깥으로 나오면 묘한 기물이 있어 과연 경주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그네의 출출한 속을 달래주는 튀김, 해장국 따위의 간판이 마구 달려드는 여느 역과는 달리 광장에 무덤이 앉아 있다. 살아 있음의 엄숙함을 새삼 일깨워주기라도 하려는 듯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경주 방내리고분군 1호 돌방무덤’. 오늘은 버스나 승용차의 푹신한 의자에 엉덩이를 맞추겠지만 그 언젠가는 나하고 꽉 궁합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경주에서 출발해 포항 운제산 오어사(吾魚寺) 부근의 봄꽃을 관찰하는 탐사는 하루로 그쳐야 했다. 일요일 아침부터 하늘이 몹시 찌푸르르하더니 드디어 비가 내렸다. 봄을 풀어놓고 미세먼지를 진압하는 달콤한 봄비였다. 산으로 못 가는 아쉬움을 흠뻑 달래고도 남을 만큼 반가웠다. 그냥 귀가하기가 서운해서 경주 남산 자락의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 들렀다. 야생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나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나무마다 특징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경주라서 그런가. 상투적이지 않은 알찬 정보들이 빼곡하다. 내 고향에서 목탁으로 만든다는 살구나무를 두고 “살구(殺狗)란 의미는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살구씨를 달여서 먹으면 독을 중화시킨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희미한 빗줄기 사이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우뚝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설명문이 붙은 낙우송(落羽松)이다. “잎이 깃털처럼 떨어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뿌리 주변에서 흔히 공기뿌리를 볼 수 있으며 잎이 어긋나게 달리는 점이 메타세쿼이아와 다르다. 4~5월 수꽃은 가지 끝에 달려 밑으로 늘어지고 암꽃은 둥그스름하게 핀다. 관상용으로 심어 기른다.”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주는 비 사이로 남산의 능선을 본다. 앞으로 낙우송을 만나면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는 말도 꼭 따라 나오겠지, 궁합을 맞추듯! 낙우송, 낙우송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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