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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내가 원하는 세상

경향 신문 2021. 4. 6. 09:35

10대의 나에게 서울은 소속되고 싶은 ‘더 넓은 세상’이었다. 20세가 되던 해 첫 서울살이를 해봤다. 옥탑방이었다. 방 한가운데 누우면 벽 너머의 빗소리와 바람 소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래층에서 옥상으로 연결된 간이 계단은 겨울이면 얼기 일쑤였고, 헛다리라도 짚을까 봐 계단을 오를 땐 언제나 눈을 부릅떠야 했다. 낮은 수압 때문에 가끔 집이 아닌 지하철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곳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그곳은 법적으로는 내 집도 아니었고, 내 돈으로 빌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 혼자 사는 첫 보금자리였다. 주민등록증 뒤편에 찍힌 새 주소, ‘서울특별시’라는 도장이 나를 넓고 낯선 서울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나에게 배당된 첫 선거 공보물도 그 방에서 받았다.

‘서울이 도대체 뭐길래?’라는 질문을 하게 된 건 나중의 일이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유만으로 400만원을 웃도는 돈을 기꺼이 내고, 학교 앞에서 살기 위해 평당 월세 10만원도 넘는 원룸에서 살아야 했다. 그렇게 착취당해야 하는 구실은 모두 비슷했다. 서울에 ‘입성’한다는 건 그런 거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울이 가진 미래의 기회들을 잃을 게 뻔하므로. 스무살의 나는 법적으로는 서울시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 권리도 갖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은 나도 몰랐던 나의 권리를 알려준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내가 살던 곳이 불법건축물임을 안다. 주거에 ‘임시’는 없다. 잠시 살 곳이라도 쾌적하고 안정적인 환경은 필요하다. 이것 또한 서울이 보장한 청년 참여 활동을 통해 만난 동료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물론 내 권리를 아는 것과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은 다르다. 청년주거, 청년노동, 청년참여 등 이전에는 호명되지 못한 권리들이 당연해졌지만, 청년의 삶은 이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정치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시장 선거도 마찬가지다. 마치 투자와 소유를 위한 경쟁이 공정인 양, 너도나도 공정의 발판을 닦겠다는 말뿐이다. 그러나 그 공정 위에서 안정적일 수 있는 건 소수뿐이다. 개발하고 공급해도 그 재화에는 닿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제도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내가 원하는 안정적이고 불평등과 부당함이 없는 세상은 이런 거다. 서울에 살지 않더라도 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 어떤 형태로 주거를 점유하든 쾌적하게 눈뜰 수 있는 오늘. 존엄을 지키며 노동할 수 있는 일터. 단 한 번도 정치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 없었던, 전 지구적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행정. 이 모든 것을 청년과 함께 논의하는 지역 공동체.

내일모레면 시장이 될 분께 말하고 싶다. 아니 이 땅의 모든 시장, 도지사, 시의원, 구의원, 국회의원 등 정책결정자들에게 호소한다. 목소리를 가진 자의 욕망보다, 목소리 없는 자의 삶을 들여다봐주기를. 부(富)와 소유가 권리가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아직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권리를 우리에게 되찾아주기를.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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