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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문화와 삶

내 이름을 불러줘

경향 신문 2021. 4. 15. 09:34

할머니의 산소 앞에 놓을 다과를 사기 위해 남동생과 나는 구불구불한 농촌 국도를 달리며 매점을 찾아 헤맸다. 대부분이 마을 이름으로 지어진 상점들 사이에 ‘정우슈퍼’가 보였다. 카스텔라와 우유를 사면서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우는 혹시 사장님 자제분 성함인가요?” 하고 물었다. 사장님은 고개를 젓다가 살짝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아니. 옛날에 옆집이 ‘정우약국’이었는데 따라 지었지.”

그건 어릴 적 내 장래희망이 정해진 것과 같은 원리였다. 엄마는 내가 ‘하여간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랐고 나는 그 기대를 충족하고 싶었다. 진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을 해야 하는 때가 찾아왔지만 극장에 가거나 텔레비전 시청 외엔 아무 취미가 없었던 나는 눈앞에 보이는 사물로 끝말잇기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영화감독이나 방송국 PD가 되어보겠다고 선언했다.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진정성을 의심받는 건 왠지 싫었던 나는 나의 근사한 모델이 되어줄 이름들을 찾아 엄마를 설득할 계획을 세웠다.

모델을 찾는 데 있어 성별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좀 더 쉬웠을까? 그러나 어린이들은 직관적으로 나와 닮은 얼굴에서 미래를 그려낸다. 유명 연출자는 모두 당연한 듯 남성인 세상에서 그 직관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영화감독, 프로듀서가 되는 건 원래 참 어려운 일인데 나는 ‘여자이기까지’ 한 것이니 죽고 싶었다. 그래서 귀한 여성 연출자들을 찾아낼 때마다 감격과 좌절이 동시에 찾아왔다. 난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롤모델 하나 정하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내가 찾은 이들은 전부 ‘살아남은 자’들이었고, 저항을 통해 자신을 지킨 그들의 작품은 늘 어딘가 비통했다.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짐승’편의 연출은 정재은 감독이 맡았다. 20대의 변영주가 여성 방청객들을 두고 상기된 채 말한다. “여성의 많은 모습들은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이 땅에는 아직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난 받고 있는데, 과연 그 고난의 이유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라면 저 역시도 고난을 받는 것이겠죠.” 방송의 해제문이나 다름없는 발언 뒤로 성폭력특별법 제정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1991년 김부남 사건(어린시절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아저씨를 21년 만에 살해), 1992년 김보은 사건(13년간 자신을 강간한 의붓아버지를 살해)이 축을 세우고, 과거 우리 사회의 야만을 이야기하는 뉴스, 토크쇼, 콩트, 드라마 푸티지들이 그사이를 가로지른다. 정재은은 방송을 통해 목격자, 연대자, 피해자들을 호명하며 여성운동의 크레디트를 만들고, 당신이 여성이라면 이름을 남기는 것이 곧 생존이었던 삶을 가늠하고, 감당하라 말한다.

지난 3월에 열린 이정 작가의 개인전은 에이드리엔 리치의 시집 <공통 언어를 향한 꿈>과 동명으로 모든 작품의 제목이 해당 그림의 모델인 여성의 이름으로 지어져 있는 것이 인상적인 전시였다. 살결, 잔털, 옷의 보풀 한 올 한 올이 선명한 힘을 가진 그의 그림은 감상 뒤에 제목을 한 번 더 눈에 담음으로써 여성들의 침묵을 깨우고 그들 각자에게 이름을 찾아주려 했던 에이드리엔 리치의 시와 삶이 포개지며 여운이 증폭된다. 엄마의 목소리로 부르던 외할머니의 이름, 지금은 헤어진 친구가 다정히 불러주던 나의 이름, 내가 고독에 잠길 때마다 주변을 서성여주던 수많은 여성들의 이름. 왜 어떤 이름은 호칭보다 더 무겁게 그이의 인생을 느끼게 하고,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가슴을 저리게 만들며, 그 이름의 존재만으로 누군가의 구원이 되는 것일까? “우리가 서로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혼자다.” 에이드리엔 리치의 시 ‘굶주림’의 마지막 구절은 내 질문에 대한 대답과 동시에 더 많은 여성들의 이름을, 인생을 찾아 불러야 한다고 충고한다.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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