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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은 ‘공부의 신 강성태’ 유튜브 채널에서였다. 이 채널은 교육 전문 유튜브로, 구독자 수가 101만명에 이른다. 수험생, 취업준비생들에게 좋은 교육 콘텐츠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채널로도 유명하다. 일부 유튜브 이용자들이 운영자 강성태의 침묵을 ‘선택적 분노’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들은 유튜브 댓글로 강성태가 곽상도 국회의원의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퇴직금 50억원을 받은 것에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제원 국회의원의 아들 힙합가수 로엘이 집행유예 기간에 다시 음주운전을 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것에도 침묵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런 문제제기가 이뤄진 이유는 강성태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부정 의혹에 강하게 비판을 했고, 박성민 청와대 청년 비서관이 25세의 나이에 1급 공무원으로 임용된 것에 대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적 분노’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20대 청년세대가 조국 전 법무장관 딸의 입시 부정 의혹에 대해서는 시위까지 조직했었는데, 곽상도 아들 50억원 퇴직금 문제와 장제원 국회의원 아들의 사건에 대해 침묵한다고도 했다.

과연 20대 청년들이 ‘선택적 분노’를 한다는 주장은 정당한 것일까? 20대 보수화는 타당한 판단일까? 20대에게 ‘공정한 분노’를 요청하는 것은 올바른 것일까?

20대 청년들은 ‘선택적 분노’라는 말이 ‘의도적인 편가르기’라고 반박한다. 청년세대는 한국사회의 공정성에 더 예민하고 민감하다. 평등의 감수성은 청년세대의 공통감각이다. 진보라고 자부했던 586세대가 과연 현재를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만들었는가? 586세대는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가족에게 되물림되는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불평등 분배’를 묵인하지 않았는가? 청년세대는 최근 아파트 값 폭등과 같은 비정상적 상황도 기성세대의 욕망이 초래한 효과라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조국 전 장관 사건과 곽상도 국회의원 사건도 바라본다. 조국 전 장관 딸의 입시비리 의혹은 입시 과정의 공정성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한다. 20대의 입장에서 한국사회가 과정과 절차에서 공정한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공통의 문제이다. 하지만 곽상도 국회의원 아들의 50억원 퇴직금 문제는 뇌물 비리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공정한 운영을 일탈하는 부정행위는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이기보다는 도덕적 위반행위이기에 개별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20대가 더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분노’로 청년세대를 호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선택적 정치성’이 개입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특정 정당의 진보성과 보수성만으로, 청년세대를 ‘보수와 진보’로 편가르기를 한다. 진보는 ‘위험스럽지만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보수는 ‘낡았더라도 검증된 안전함’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청년세대는 미래를 향해 있기에 진보적 성향을 지닌다. 청년세대의 진보는 기성세대의 진보에 대한 진보다.

분노는 너무도 위험한 감정이지만, 역사적으로 ‘혁명과 변화’의 에너지이기도 했다. 공적인 영역에서 분노는 공정과 정의가 훼손되었을 때 느끼는 강한 거부이다. 격렬한 분노는 미래의 희망을 부정하는 파괴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세네카는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강하게 경계했다. 그는 “분노는 이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감정”이며 “징벌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보았다. 세네카는 분노로 인해 이성이 마비되는 상태를 두려워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슷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는 ‘분노에 사로잡혀도 노예지만, 모욕을 당했는데도 분노를 참으면 노예’라고 했다. 그는 당연히 화낼 일에 올바른 방법으로 분노하는 것은 ‘중용의 미덕’으로 칭찬할 만하다고도 했다. 분노 그 자체는 ‘대상에 대한 미움’이기에, 악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 높다. 하지만 분노가 ‘참여와 실천의 의지’로 연결되면 변혁의 힘이 된다. 경계해야 할 것은 누군가가 분노의 감정을 부추기거나, 그 분노의 에너지를 기성 권력의 이익에 동원하려 하는 부조리한 상황의 발생이다.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의 바탕에는 ‘분노한 주체들’이 있었다. ‘의로운 분노’는 ‘참여와 실천’과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가 분노를 동원하려고 하면,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20대가 ‘선택적 분노’를 하고 있다는 비판은 온당하지 않다. 그 비판의 이면에는 20대의 분노를 동원하려는 ‘선택적 정치성’이 개입되어 있다.

오창은 중앙대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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