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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전설적인 포르투갈의 파두 가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리스본의 판테온에 묻혀 있다. 판테온에서 호드리게스를 위해 정성스럽게 꽃을 손질하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났다. 호드리게스의 팬이라고 했다. 노인은 호드리게스가 누구인지 알고 여기 왔냐고 물었고, 나는 호드리게스의 ‘빅 팬’이라고 답했다. 동양 남자가 호드리게스를 모를 것이라 짐작했던 노인은 ‘빅 팬’이라는 기대하지 못했던 말을 듣자마자 반가움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호드리게스를 기억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지금도 호드리게스의 노래를 들으면 호드리게스 죽음 이후에도 그를 기억하고 있는 그 노인이 생각난다.

편집자 이환희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를 몇 년 전 출판 기획과 관련된 업무로 처음 만났다. 글 쓰는 사람과 편집하는 사람의 관계로 알게 되었지만, 나와 이환희씨는 일상을 공유하는 이른바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그는 책을 만드는 직업인이자 젠더 문제를 고민하는 남자였고 환경을 걱정하는 동시대인이었다. 그는 같은 일을 하는 편집자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연인이면서 친구이자 동지처럼 보이는 그들의 결혼 후 삶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지켜보면서 내 머릿속에서 ‘반려자’라는 단어는 추상적인 기호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관계를 지시하는 구체적인 단어로 변화했다.

나는 글을 쓴다. 이환희씨는 누군가 쓴 글을 책으로 만드는 통칭 편집이라 부르는 일을 했다. 나는 글을 쓰지만 책을 만들지는 못한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쓰는 글은 절대 책이 될 수 없다. 편집자는 글쓴이가 자기의 글에 취해 알아차리지 못했던 원고의 허점과 오류를 찾아내고, 방향을 잃은 작가에게 슬쩍 해결의 실마리를 제안하기도 한다. 작가에게 편집자는 초고를 읽어주는 첫 번째 독자이자 언제든 작가의 편이 되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동료이며 초고를 책으로 변신시켜주는 전문가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편집자는 원고의 장점을 주로 보고 그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장점이 단점을 가리거나 넘어서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글쓰기는 외롭다. 그리고 두렵다. 작가가 글쓰기 도중 무기력에 빠졌을 때 편집자는 작가가 기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의 편이다. 그는 말했다. “진짜 저자분들과 연애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원고와, 책을 쓰는 분들과 때로 밀당도 하고, 속 깊은 얘기도 많이 하니까요.” 작가는 책으로 인한 모든 영광을 독차지한다. 원고를 쓴 것에 불과했으나 작가의 이름은 책표지에 큼지막하게 인쇄되지만, 책을 만든 편집자의 이름은 책의 앞 혹은 뒤에 인쇄된 서지정보에 눈에 띄지 않게 적혀 있을 뿐이다.

그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는 동안 이환희씨의 손을 거친 책의 제목을 하나씩 불러본다.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소득의 미래>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그가 어떤 가치를 지향했는지 그가 만든 책의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환희씨의 반려자 이지은씨는 자신의 책 <편집자의 마음>에서 책을 만드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혹시 누군가가 ‘너희 가운데 하나는 이 까나리액젓을 마셔야 해’라고 말한다면 모두 사이좋게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 비위가 좋은 나는 당신보다 두 모금쯤 더 들이켤 수도 있겠지. 그러나 누군가가 이 벌칙을 독박 쓰게 놔두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당신의 불행 앞에서 신명나게 춤추는 사람이기보다 기꺼이 함께 우는 사람이고 싶다.”

죽음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인간은 기억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기꺼이 함께 우는 사람”이었던 그가 서른다섯 살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더라도 그가 만든 책에 담긴 마음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는 책을 남기고 먼 여행을 떠났다. “환희씨! 나중에 거기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합시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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