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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카메라를, 한 손에는 아이 손을 잡고 돼지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 관한 다큐멘터리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상영을 위해 제65회 베를린영화제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평소 돈가스를 즐겨 먹었지만 막상 돼지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던 필자는, 2011년 구제역 살처분 대란을 보며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고 처음으로 돼지의 삶에 관심 갖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들고, 세상에서 가장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러 간 것이다.

베를린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다. ‘어쩌면 내 영화가 보여주는 것들이 이들에겐 철 지난 과거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상영을 하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독일인들에게도 공장식 축산과 육식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베를린영화제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먼 나라 돼지에 관한 다큐멘터리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겠다고 휴일 밤 자정 넘도록 객석에 남아있는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화제 개막식 후 열린 리셉션 파티가 인상적이었다. 수천명 게스트를 위해 몇 가지 음식이 제공됐는데 모두 채식 메뉴였다. 소시지, 햄이 그토록 흔한 나라에서 말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비용 절감을 위해? 설마.

이 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이다. 기름기 없는 그릇과 설거지의 간편함을 위해?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은 나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영화제 스태프 한 사람이 답한다. 베지테리언에 대한 존중 때문이라고. 어쨌거나 버섯과 감자, 파슬리로 맛을 낸, 소박하지만 향 깊은 최고의 일품요리를 먹으며 그동안 한국에서 감내해야 했던 소수자의 불편함과 차별이 오버랩됐다.

‘비(非)육식인’이 된 지 4년. 회식은 곧 고기를 의미하는 한국에서, 비육식인은 공깃밥에 김치만 먹어야 할 뿐 아니라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는 타박에 시달려야 한다. 1차는 삼겹살에 소주, 2차는 치킨에 맥주, 3차는 소시지에 폭탄주, 해장은 선짓국. 아침에는 햄 샌드위치, 점심에는 돈가스, 저녁에는 설렁탕. 평일에도 고기, 회식이라서 고기, 명절이라고 또 고기. 주요리도 고기, 국과 나물 반찬에도 고기 분말 조미료. 현재 전 세계에서 육식을 피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는 햄버거의 나라 미국도 아닌, 소시지의 나라 독일도 아닌, 한국일 것이다. 진보적인 성향의 모임에서도 육식에 대한 자제는 드물다. 주변에 당뇨병, 고혈압, 뇌질환, 심근경색 약 먹지 않는 사람 드물고, 이른 나이에 각종 암으로 죽어가는 지인들과 그 가족들이 무섭게 많아졌다. 소아 비만도 급증했다.

육식과 채식에 관한 일러스트 (출처 : 경향DB)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이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서라는 안내와 함께 객실에 스프레이 방역제를 뿌린다. 인천공항에는, 구제역과 AI가 심각하니 검역에 협조해 달라는 방송이 울려퍼진다. 설에 아이가 고열을 동반한 독감에 걸렸다. 혹시나 조류독감의 변이는 아닌지 마음을 졸인다. TV에는 ‘구제역과 조류독감 확산’ ‘방역 안간힘’ ‘고향 방문 자제’ ‘끓여 먹으면 문제없으니 안심하고 고기 소비하라’ ‘조류독감으로 죽은 홍콩 사람들’ 뉴스가 흐르고 소, 돼지, 닭, 오리 살처분은 이제 설 즈음 연례행사가 되었다.

어떤 약제로도 예방 불가능한 인수공통 전염병을 수많은 학자들이 경고한다. 인류 멸망과 생태계 파멸의 징후가 농후한 세기말적 상황 속에 우리는 아랑곳없이 치킨을 주문하고, 오늘도 공장에선 생명들이 고통스럽게 사육, 도살된다. 공허한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보다, 죽이고 죽는 공멸의 기차를 멈추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한 길 아닐까?

기차를 멈출 브레이크는 두 가지. 공장식 축산을 동물복지형 농장으로 전환하고 고기 소비를 크게 줄이는 것, 그리고 동물의 피와 눈물 대신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한 밥상을 차리는 일이다.


황윤 | 다큐멘터리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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