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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에 아직 계엄을 가볍게 여기는 자들이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 특히 이런 자들이 많은 것 같다. 이들은 1972년 광화문을 점령한 탱크와 1980년의 무자비한 학살을 직접 눈으로 보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했는데도 계엄을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한다. 심지어 그중 어떤 자들은 계엄을 그리워하는 인상을 주는 발언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 자들은 촛불시위가 무력시위로 번질 가능성이 있었으니 대비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주장하고, 촛불집회에서 차벽을 넘는 시도가 있었는데 대비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강변한다. 기무사의 문건이 실행 가능성이 없는 개념계획일 뿐이고, 그런 문건으로 군대가 동원될 가능성이 없었는데 침소봉대하지 말라는 발언도 기자회견과 공식 회의에서 버젓이 한다. 독재의 뿌리에서 성장해왔고 얼마 전까지 독재에 방불하는 정권에 부역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라고 보아넘기지 못할 위중한 주장이고, 촛불집회에 폭력이 섞이길 기다리고 계엄이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라도 한 듯한 발언들이다. 민주주의의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독재를 그리워하는 것 같은 발언들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7월26일 (출처:경향신문 DB)

그런데 이런 자들을 상대하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도 협소하다. 기무사 문건이 위헌적이고 쿠데타 모의계획이니 철저히 수사해 책임자는 처벌하고, 직무범위를 벗어난 월권행위를 한 기무사를 손보는 것은 백번 타당하지만, 여기서 멈추는 것은 기존 낡은 법률을 집행하는 최소한의 조치일 뿐 촛불혁명 정신의 구현과는 거리가 멀다.

계엄은 외침이든 내란에 의한 것이든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가방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도입하는 조치이다. 시민들의 집회와 시위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설사 시위에 폭력이 섞여 들어간다고 해도 절대 이를 구실로 발령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무사 문건이 쿠데타 음모에 해당한다고 보는 정부나 여당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고작 들리는 말이라곤 촛불시위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평화시위였는데 어떻게 폭력과 계엄 운운이냐 정도이다. 게다가 문건의 검토와 보고 등을 둘러싸고 정부 안에서 빚어진 혼선에 대한 ‘계엄준비 옹호자’들의 공격에 점점 수세에 몰리며 방어에 급급한 형국이다.

4·19혁명 이래 열차례 가까이 발령된 계엄은 모두 효율적인 국가방어와 관련없이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억누르고 정권을 연장하거나 찬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동안 계엄은 사실상 계엄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오직 민주주의를 압살하기 위해서 발령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계엄이 이렇게 자주 시민 대상으로만 발령된 탓인지 독재를 그리워하는 자들은 물론이고 민주진영 인사들까지도 법률에 규정된 계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정부나 여당 인사들 어느 누구에게서도 폭력시위라 해도 계엄은 발령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은 들을 수 없다.

지금 기무사 문건을 놓고 국회에서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계엄이 그동안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고, 계엄을 전쟁의 경우에만 발령하는 것으로 분명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국회 어떤 당의 원내대표는 기무사 문건 보고를 둘러싼 국방부와 기무사의 진실공방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한마디도 안 하는데, 이게 나라인가라는 한탄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엉뚱하게 그런 사소한 사안에 왜 대통령을 끌어들이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대통령이 할 일은 그게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 직접 나와서 말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여기서 대통령이 할 일은 계엄이 본질적으로 어떤 것인지, 군의 계엄문건 작성 자체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설명해주고, 시민을 상대로 하는 계엄은 앞으로 문건상으로도 절대 나올 수 없도록 군을 철저하게 개혁하고 법률과 헌법을 정비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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