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여러 스트레스를 받지만, 요즘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다. 기도의 주제 역시 “원전 사고 나지 않게 해주세요. 핵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주세요”가 되었다. 아이가 고이 잠든 밤에, 혹은, 동네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리는 어느 오후, 긴급 속보 뉴스와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지는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원전 사고 스트레스가 영혼과 건강을 잠식하고 있다. 내 백일몽이 차라리 과대망상에 그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악몽이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매우 높은 나라이고, 수명을 다한 노후 원전이 무리하게 가동되고 있으며, 관련자 비리와 정경유착으로 온갖 고장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나라이다.

지난 15일, 한국인 모두의 운명에 중차대한 회의가 열렸다. 30년 설계수명을 다해 운영이 몇 년째 중지돼 있는 월성1호기 원전의 수명을 연장할 것인지, 이제 그만 폐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안건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상정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끝났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월12일 이 문제를 다시 다루어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월성1호기를 폐쇄해야 하는 이유는 명명백백하다. 첫째, 노후 원전이기 때문이다. 노후 원전은 그 자체로 대형사고의 높은 가능성을 안고 있다. 모든 기계에는 수명이 있고, 오래되면 고장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도 수명을 연장해서 40년을 가동하다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의 원전은 지금까지 숱한 고장을 일으켜왔다. 월성1호기에서도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지만 은폐된 적이 있다. 2009년 3월 월성1호기 폐연료봉 교체 과정에서 다발 이음매가 파손되어 2개는 물에 빠지고, 하나는 콘크리트 바닥에 추락하는 대형사고가 났다. 수습할 방도가 없으니 작업원 1명을 방출실로 들여보내 치사량의 방사선을 내뿜는 폐연료봉을 집게로 처리하게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 사고를 은폐했지만, 4년 뒤 원전 비리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그 작업원이 사고현장에 투입된 이후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진술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둘째, 월성원전은 중수로 원전이라서, 경수원전에 비해 5배나 많은 핵폐기물이 나온다. 지금도 우리는 처리 불가능한 고준위 핵폐기물들을 핵발전소 임시저장고에 포화될 정도로 쌓아놓고 있지만 처치할 방법이 없다. 월성원전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핵폐기물은 다 어디로 갈 것인가? 고스란히 우리의 아이들과 후손이 떠안게 된다.

경북 경주시 양북·양남면 주민 등 1000여명이 29일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전 앞에서 월성 1호기 폐쇄를 요구하는 집회를 연 뒤 도로를 행진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셋째, 월성1호기는 중수로 원전이라 삼중수소라는 방사성물질을 다량 발생시킨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의 소변에서 실제 삼중수소가 34.1㏃/L(리터당 베크렐)까지 검출되기도 했다. 고리, 월성, 울진, 영광의 원전 주변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높은 갑상샘암 발병률을 보이고, 무려 301명이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갑상샘암 피해 손해배상 공동소송을 청구한 상태이다.

넷째, 월성1호기 수명 연장은 경제성 면에서도 추진해서는 안될 사업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월성1호기 수명연장은 최대 2269억원 손해를 보는 사업임이 드러났다.

다섯째, 월성1호기를 폐쇄하더라도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다. 월성1호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불과 1%도 되지 않는다. 현재 2년 넘게 가동이 중단되어 있지만 전력공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한 5년 후에는 전력 예비율이 30%에 육박한다고 하니 더욱더 문제 될 것이 없는 상황이다.

수명이 끝난 노후 원전 월성1호기를 연장 가동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도박을 하는 일이다. 부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를 간곡히 요청한다.

황윤 | 다큐멘터리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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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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