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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2010년 2월 미국 국가과학아카데미 소속 과학자 250여명은 성명을 통해 기후과학자들이 1950년대 매카시에 의해 저질러진 공산주의자 마녀사냥과 비슷한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일부 정치인들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발언을 일삼으면서 시민들이 행동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여기에서 일부 정치인들이란 오바마 대통령이 시도했던 기후변화법 제정을 번번이 무산시켰던 공화당 의원들을 말한다.

장면 2. 같은 해 3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미국의 석유회사 코흐 인더스트리의 공동 소유주인 찰스·데이비드 코흐 형제가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회의론자들에게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제공해왔다고 보도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구온난화가 거짓이라는 주장은 코흐 형제가 돈을 댄 정치단체와 싱크탱크들을 통해 재생산되어 친기업 성향의 언론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 헤리티지 재단, 케이토 연구소 등이 보고서를 내면 폭스 뉴스가 이를 받아서 보도하는 방식이다.

장면 3. 2013년 9월 “북극 빙하 1년 새 오히려 60% 늘어…지구 온난화 맞아?”란 제목의 기사가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의 첫 화면을 장식했다. 이 기사의 들머리에는 2012년과 2013년 8월의 북극지방 위성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었다. 기사는 지구가 1997년부터 빙하기에 접어들었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며 끝을 맺는다. 기사 출처는 영국의 일요판 타블로이드 신문 ‘메일 온 선데이’, 작성자는 데이터를 입맛에 맞게 골라내고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독자를 호도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데이비드 로즈였다.

장면 4. 올해 1월 전경련이 지원하는 한국경제연구원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홍보 영상을 제작해 공개했다. 이 영상은 1998년 이후 기온이 증가하지 않고 있어 지구온난화가 온실가스 배출과 관계가 없다는 가능성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상의 후반부에는 제작 동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지구온난화는 주기적인 자연현상일 뿐이므로 배출권거래제 등 정부의 탄소배출 규제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장면 5. 지난 2월 한국일보는 ‘지구온난화는 거짓이다’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인터뷰에 응한 존 시온 박사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행정직으로 일하다 은퇴한 후 미국 하틀랜드 연구소에 자문을 제공해왔던 인물이다. 하틀랜드 연구소는 담배회사와 석유회사가 돈을 대는 연구를 수행하는 극우 성향의 연구소로 알려져 있다. 이 기사에는 1994년 은퇴 후 20년 이상 학술활동이 거의 없었던 무명 인사를 왜 인터뷰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처럼 장면 몇 개를 한꺼번에 열거하는 것은 과학과 미신의 경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지구온난화가 실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활동에 의해 초래된 것인지는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다. 과학계나 세계 정치무대에서 사이비 과학과 음모론이 들어설 여지는 별로 없다. 전경련이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영상 수백개를 만들어 뿌린다 해도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 세계 기후과학자 35명이 연구하면서 느낀 점을 올린 글 모음. 이들은 '인간에 의한 기후파괴' 증거들이 널려 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 대한 좌절과 분노, 우려를 드러냈다. (출처 : 경향DB)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과학은 정치와 돈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과학은 정치투쟁의 총칼이 되기도 하고 기업 이익을 사수하기 위한 방패가 되기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려야 할 경우 과학은 누군가에겐 면죄부, 다른 누군가에겐 피눈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참과 거짓을 가리려면 먼저 누구의 이익을 위한 주장인지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이 중립지대에 있다고 믿는 순간, 과학과 미신 사이의 거리는 매우 짧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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