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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를 부르는 계절이 왔다. 쌀쌀한 바람에 어묵국물이라도 들이켜면 혓바늘처럼 따가운 시간을 견디는 데 소주만 한 게 있을까. 그런데 최근 한 소주회사 때문에 소주를 더 들이켤 일이 생겼다. 소주병 재사용률을 높이려 소주회사들이 공용으로 사용하기로 한 표준병이 초록색병이다. 이 약속을 깨뜨리며 지난해 4월 투명한 병이 등장, 출시 몇 달 만에 1000만병을 판매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새 단장한 소주는 잘 팔렸지만 이 비표준병을 골라내기 위한 비용이 증가하면서 소주병 재사용 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후 다른 소주회사들도 비표준병 용기를 사용한 제품을 기획 중이라는 데 있다. 비표준병이 우후죽순 생기면 분류, 운반, 저장 비용이 늘어나 재사용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보증금제도는 1980년대 중반 시작됐고 주류는 국세청, 청량음료는 보건복지부 관할이다. 2003년 환경부 자원재활용법으로 보증금제가 통합운영되고 있어 표준화의 명목상 주도자는 환경부이지만 법에 자발협약으로 돼 있다. 이에 따라 소주업계는 2009년 ‘소주 공병 공용화 자발적 협약’을 맺고 모양과 색깔, 크기가 같은 소주병을 사용해 왔었다.

소주 업체들은 다르게 생긴 병의 등장으로 빚어진 소란을 지난 8월25일 ‘공용병과 이형병의 1 대 1 맞교환’이라는 합의로 진정시키려 했다. 이에 환경운동연합은 ‘소주병 공용화 사용 법제화’ 촉구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형병의 유통 허용은 10년 넘게 지속된 공용병 재사용 시스템의 훼손으로 사회적 비용 부담과 환경 문제의 시작점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소비자는 무심하게 소주나 들이켜야 하나.

종종 주식시장을 들여다본다. 후원요청을 하기 전 상장사의 주가를 확인하는 건 상식이다. 최근 모회사가 핵심 미래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하겠다고 발표해 주주들이 청와대에 청원하는 일까지 있었다. 경영적 고뇌가 얼마나 클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만, 알짜 사업부를 떼어낼 때는 회사의 이익과 지분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소주주들의 갈등도 같이 풀어줘야만 한다. 물적분할은 회사만 좋은 일이라는 걸 증권사들도 알고 있지만 매수 기회라고 말은 해놓고 자기들의 주식은 매도하는 ‘웃픈’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업부 분할이 주주들에겐 더 좋은 기회이고 회사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경영진의 약속을 믿고 싶다. 하여 두고두고 지켜볼 계획이다.

따뜻한 이야기도 있다. 연초, 한 소비자가 일회용 빨대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의미에서 사용하지 않은 빨대를 모아 식음료 업체에 되돌려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매일유업의 고객 최고 책임자(CCO)가 두 장 분량의 손편지로 화답했다. “편리하려고 부착한 빨대가 오히려 환경을 오염시켜 고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개선을 위해 포장재 구조를 연구하고 있으니 앞으로 변화를 지켜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시베리아가 38도 이상고온 현상을 보이면서 동토 속 좀비들이 기어나오고 있다. 코로나19처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후재난 앞에서 지구, 사회, 기업, 개인들의 지속 가능성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고, 정부·기업·시민이 상호 의존하는 관계라는 걸 망각해선 안 된다. 지속 가능성이란 무엇일까? ‘신뢰’의 다른 이름이라고 부르고 싶다. 신뢰는 요청할 수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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