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사망률은 연령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신생아와 노인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산업화 이전까지만 해도 태어난 아기 넷 중 하나는 첫돌을 넘기지 못했다. 물론 요즈음 신생아 사망률은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다른 연령대와 비교하면 여전히 40대까지의 사망률을 크게 앞지른다. 사망률은 첫돌을 지나면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가파르게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재작년 우리나라 80대들의 사망률은 10대의 524배, 20대의 212배였다. 기계의 고장률도 사람의 사망률과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제품의 사용시간을 가로축에 놓고 고장률을 세로축에 배치하면, 처음에는 높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낮아져 평평한 상태를 유지한 후 다시 증가하는 서양 욕조 모양의 U자형 그래프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공학자들은 이 그래프를 ‘욕조 곡선’이라고 부른다. 이 곡선은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고장률을 시간의 함수로 나타낸 것이다.

제품 이용 초기에는 고장이 자주 발생한다. 설계나 제조상의 결함 아니면 불량부품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애프터서비스나 결함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면 고장률이 뚝 떨어지게 되는데, 이 기간에는 고장이 나더라도 제품의 결함보다는 우발적인 요인 때문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제품 수명의 말기로 접어들면 부품이 마모되고 노화하면서 고장률이 다시 빠르게 증가한다. 이 기간에는 애프터서비스와 보상 모두 불가하다.

결국 이용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먼저 돈을 들여서라도 제품을 수리해 계속 쓰는 방법이 있다. 전제는 수리비용이 신제품 구입비용보다 훨씬 적게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리를 마치면 기능도 신제품과 큰 차이가 없어야 한다. 두 번째 선택은 제품의 수명이 다했음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게 없으면 정말 안되는가?”라는 질문일 수 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라면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까운 돈을 들여서까지 수리해 다시 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 1호기 가동 연장 여부에 대해 격론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소식이다. 1983년 4월부터 상업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캔두형 중수로이다. 캔두형 중수로는 삼중수소를 다량 방출하고 설계결함과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국가가 외면하고 있는 원자로다.

따지고 보면 ‘욕조 곡선’은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복잡계일수록 잘 들어맞는지도 모른다. 노심이 녹아내렸던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는 가동 후 3개월,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가동 후 1년7개월 만에 발생했다. 이 두 사고는 제품 사용 초기의 높은 고장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반면 후쿠시마 원전 1호기는 사고 발생 직전 운영허가권을 10년간 연장 받았던 노후 원전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마모고장기간’, 다시 말해서 설계 수명을 초과한 원전은 외부의 충격에 쉽게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가동이 중단된 원자력발전소 월성 1호기 재가동 여부에 대한 심사가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진행되는 동안 원안위가 있는 서울 광화문 KT건물 앞에서 15일 지역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월성 1호기 폐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안전성 문제가 중요하지만 원점에서 생각해볼 문제들은 그 외에도 많다. 가령 지금 던져야 할 것은 이런 질문이다. “전기는 낡은 원전까지 돌려야 할 만큼 앞으로도 부족할 것인가?” “월성 1호기를 수리해 계속 쓰는 방안은 다른 대안들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일인가?” 5년 후에는 전력예비율이 30%에 육박하고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은 적자가 최소 2546억원이라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을 고려하면 답은 분명해진다.

원전과의 동거는 당분간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낡아서 위험한 원전까지 끼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월성 1호기, 이제 그만 편히 쉬도록 놓아주는 것이 어떤가.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