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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목록(리스트)과 함께 살아간다. 목록 중에는 순위가 매겨진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순위가 없는, ‘무순’의 목록이라도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대강 가늠할 수 있다. 어쩌면 목록 안에 든 것만으로 우선순위에 포함된 것일지도 모른다.

똑 떨어지는 수치로 집계되는 사회통계나 경제지표, 온갖 성적 순위는 논외로 치자. 그것 말고도 일상생활에서 좋든 싫든 접하는 목록과 순위가 무척 많다. 온라인 속 세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물건을 사거나 맛집을 고를 때를 생각해보자. 검색·추천 목록 안에서 비교해보고 결정한다. 가장 많이 팔렸거나, 평점이 높거나 하는 순위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뉴스나 유튜브·넷플릭스 콘텐츠를 볼 땐 어떤가. 누군가 친절히 제시해준 추천 목록 안에서 손쉽게 고른다. 온라인에 접속하면 도처에 목록과 순위가 깔려 있다.

목록은 유용하다. 내가 할 일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서다. 영국 심리학자 클라우디아 해먼드는 사람들이 목록을 사랑하는 심리학적 이유를 9가지나 꼽았다. 이 또한 목록이다. 그는 목록이 있으면 ①정보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고 ②무엇을 이해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고 ③확실한 느낌을 받으며 ④더 알아야 할 게 얼마나 남았는지도 금세 안다고 했다. 또 ⑤무언가를 놓치기 싫어하는 욕구를 충족하고 ⑥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고도 했다. 더불어 ⑦목록에 포함된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맞히는 재미가 있고 ⑧목록을 확보하면 두뇌의 부담이 덜어지며 ⑨목록 외의 것들을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해준다는 점도 들었다. 목록 자체에 이토록 다양한 장점이 내재한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하지만 목록은 때때로 귀찮다. 원치도 않는 정보를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 목록만 보면 내가 하거나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좌절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목록 외의 것들을 고려하지 못하도록 목록 안에 생각을 가두어버리기도 한다. 적당한 순위까지, 목록에 제시된 내용만 알면 ‘만사형통’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목록과 순위가 주관적이고 편향되며 조작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이다. 사용자들에게 목록과 순위를 제시하는 기반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인데, 설계·운용 과정에서 편향이 발생할 여지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데이터를 가공하고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각종 전자상거래·콘텐츠 사이트들이 제공하는 목록과 순위는 결국에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존폐가 갈릴 것이다. 각자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찾아내는 데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MZ세대와 그 이후 세대까지 지금의 목록과 순위, 추천 시스템이 유효할지 알 수 없다.

국내 포털 네이버가 25일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서비스를 폐지한다. 2005년 시작돼 ‘실검’으로 불린 이 서비스가 16년 만에 사라지는 것이다. 실검은 그동안 하루 3000만명 이용자들에게 제시된 목록이었다. 1위부터 20위까지, 실시간으로 검색이 많이 된 검색어를 보여준 것이다. 네이버 측은 다양한 이용자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간 신뢰성·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으며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검색어 순위를 놓고 세력 다툼이 벌어지는 등 부작용을 노출했다. 일부 몰지각한 업체의 광고 수단으로 악용되고, 실검을 확대 재생산하는 베끼기 기사가 남발되기도 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려준 게 아니라 세상을 잘못 알게 만든 것이다. 실검의 폐해를 생각하면 폐지 결정이 너무 늦었다. 네이버는 하루아침에 폐지 선언만 할 게 아니라 그간 실검의 문제점까지 밝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네이버의 실검 폐지는 이런 종류의 목록이 더는 필요치 않음을 증명한다. 이용자 신뢰를 잃은 목록은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 그간 실검이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했다면 되살리기 운동이 벌어질 테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실검이 없어져 불편하고 불리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검을 오용하고 악용한 이들일 것이다. 네이버일 수도 있고, 정치권이나 기업일 수도 있다. 어뷰징에 매달렸던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실검이 사라지면 이전에 제기된 문제들도 모두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또 다른 종류의 목록이 나타나고 조작·악용될 틈이 생길 것이다. 반칙과 왜곡·편향이 없는 목록을 보려면 이용자들이 철저히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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