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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용 페퍼스프레이를 샀다. 아시안 혐오범죄의 홍수 속에 맨몸으로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져 고민 끝에 결국 뉴욕법에 따라 신분증을 보여주고 구입했다. 연습으로 뿌려봤다가 분사액이 내 얼굴에 덮여 눈물 콧물 흘리며 자괴감만 들었다. 뉴욕에서는 불법이지만 다른 주에 사는 아시안 친구들은 테이저건이나 권총에 보디캠까지 장착하고 운동화를 신고 나가야 안심이라며 정보교류 중이다.

작년 미국의 혐오범죄는 전체적으로 7% 줄었지만 아시안에 대해서만 150% 증가했다. 한 아시안 단체(SAH)에서 여러 언어로 제공하는 아시안 혐오범죄 대처훈련은 4월까지 모든 예약이 순식간에 완료됐다.

영어밖에 못하는 중국계 미국인 친구 에이미가 교수와의 첫 만남에서 “너 영어 잘하는구나”라는 말을 듣고 울었단 이야기나 서울대 출신으로 하버드 박사 후 유명회사에서 일하며 시민권도 받았지만 만년 ‘이등시민’ 느낌에 은퇴 후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지인의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메릴랜드 주지사 부인 유미 호건 여사의 기고문에도 나오듯 아시안에게만 던지는 “너 진짜로는(Really), 원래는(Originally)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도 예외는 아니다. 다시 말해 아시안은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진짜, 원래 미국인’이 아니란 뜻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현재 약 2300만명, 미 인구의 7% 정도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소수인종이다. 1980년대부터 외국 출생보다 미국 출생 아시안이 더 많아졌지만 워낙 문화와 인종이 다양하다보니 잘 뭉치지 못한다. 백인과 흑인의 서사가 중심인 미국 역사에 얼마 전 북미 원주민의 이야기가 더해졌지만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태어나도 시민권을 받지 못했던 아시안은 잊히고 지워진 존재다.

발단은 백인 로스앤젤레스 경찰의 흑인 로드니 킹 구타 사건이었지만 분노한 시위대를 한인타운 쪽으로 유도한 뒤 보호해주지 않았던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도 결국은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국에 대한 분할통치 정책과 다를 바 없다. 지금 뉴스에서 부각되는 흑인들의 아시안을 향한 혐오범죄를 보며 기껏 흑인인권운동을 같이 지지해줬더니 폭력으로 답하는 것인가 분노할 수 있지만, 겉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테다. 또 흑인들은 자신들이 오랜 시간 피로 얻어낸 권리에 다른 소수인종들은 그저 편승하고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 결국은 다른 소수인종과 연대해 인종차별을 개선하고 권익을 향상시켜야 한다.

페퍼스프레이를 장착하고 용기를 내어 밖에 나가니 이게 웬걸, 무섭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이 전보다 친절해진 느낌도 든다. 콕 집어 ‘스톱 아시안 헤이트’라고 외치자 차별주의자가 아님을 과시하거나 혹여 오해를 받을까 몸을 사리는 듯하다. 뉴욕 경찰이 아시안 혐오범죄 전담팀을 꾸린 데 이어 최근 일반인으로 위장해 혐오범죄를 현장검거하고 있다는 뉴스가 알려져서일지도 모른다.

흑인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던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의 시대가 끝나가고 특히 뉴욕이 아시안 혐오범죄의 진원지가 되면서 대만계 미국인인 앤드루 양이 2위와 10%포인트 이상 차이를 보이는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뉴욕의 변화가 머지않았길 바라본다.

이채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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