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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초등학교 반장 선거부터 나는 한 번도 기권한 적이 없다. 기권은 ‘전두환당’에 투표하는 것보다 더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기권도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면 보이콧 운동을 조직해야지, 기권은 최악이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투표하고 싶지 않다(이 글은 투표일 전에 썼다).

일단, 더불어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이번 선거의 원인인 젠더 이슈의 현실은, 성소수자 인권을 내세운 오태양 후보의 홍보물이 훼손되는 수준이다. 지금 내게 이 상황은, 마치 돈 없는 이들이 살 집을 고를 때 소음과 먼지 중 무엇을 더 견딜 수 있는지 택일하라는 것 같다. 실제 나는 먼지가 덜한 집을 택했다. 소음은 집 밖에서 일하다가 잠잘 때만 귀가하여 귀막이를 하든 견딜 방법이 있지만, 먼지는 창을 닫아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모두 허사다. 주로 집에 있게 되었고, 온 동네가 공사 중이다.

3층 건물의 1층인 내가 사는 집의 사방은 다음과 같다. 전면은 15층이 넘는 고층아파트, 측면은 축대를 높이 쌓아 하늘을 가리는 5층 ‘전원주택’이다. 믿겨지지 않겠지만, 이 집은 하수도를 만들지 않아 생활하수를 그대로 방류했고, 작년 여름 생활하수와 홍수를 견디지 못해 박살난 콘크리트가 내 방 창문을 덮쳤다. 하수구를 남의 집 앞으로 내다니. 먼지를 날리며 축대는 다시 쌓았지만, 하수도는 여전히 만들지 않아 지금도 냄새가 난다. 경험해 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런 문제를 신고하는데 건축과, 주택과… 몇 번을 통화했는지 모른다. 관할 구청과의 ‘관계’가 없었다면, 가능한 일일까. 생활하수가 만들어내는 유기물로 집이 무너지는 이곳이, ‘IT 강국의 메트로폴리탄 서울’이다.

집 뒷면은 미확인 물체가 떨어진 듯 학교 운동장만 한 웅덩이가 파헤쳐져 있다. 연립주택을 부수고 아파트를 짓는다는데, 문제가 있는지 몇 년째 방치 상태다. 빨래는커녕 화초도 내놓지 못한다. 흙먼지의 나날. 사방 중 온전한 곳은 한 군데뿐으로, 현관을 마주한 앞집이다.

몇 억씩 번다는 아파트 집값 보면
“인생 잘못 살았나” 의욕 상실뿐
인구는 줄고 전국에 빈집 많은데
빈집 재활용으로 발상 전환 통해
대다수의 국민이 평생 겪고 있는
내 집 마련 고통·스트레스가 줄면
삶이 좀 더 풍요로울 수 있을 것

나는 30년 동안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이제 내게 공기는 건축 폐기물을 의미한다(중국의 황사를 탓하지 말라). 내가 사는 동네는 단독주택이 많은 곳이었는데, 지난 30년간 그 터들은 모두 아파트, 오피스텔, 고시텔, 원룸, 연립주택이 되었다. 아마도 ‘단독주택의 4인 가구’는 모두 아파트 등 공동 주택으로 변화하면서 인구가 폭증했다. 실제로 내가 사는 동(洞)은 인구 3만여명으로 웬만한 군(郡)과 비슷하거나 많다.

모든 사람이 묻는다. 왜 탈서울을 하지 않느냐고. 실제 나는 지방 오지에 집이 있다. 부모님이 귀촌하면서 지은 집인데, 두 분 모두 돌아가시면서 물려받았다. 빈집, 거의 폐가다. 집이 있는데 왜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비용이 없다. 자동차도 없고, 집수리 비용도 없고, 가장 큰 이유는 겨울철 난방비(기름보일러)가 감당되지 않는다. 서민들이 왜 서울에 살겠는가. 서울에는 도시가스가 공급된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이 고향이지만, 서울은 현재형의 중심을 의미하므로 ‘과거와 향토’를 함의하는 고향(故鄕)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내 마음속 고향은 어릴 적에 살았던 북한산과 맞닿은 은평구의 아늑한 마을이다. 10여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보았더니 다니던 초등학교는 운동장도 없는 이상한 건물이 되어 있었고, 아파트가 무섭도록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뉴타운. 거대하고 길게 늘어선 아파트 단지는 당시 분양이 안 되어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유령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내게 MB나 오세훈씨는 고향을 뺏어간 이들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민심 이반을 낳았다고 한다. 현금 몇 억을 부동산 매매로 벌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운이 빠진다. 그런 돈은 내가 원고료와 강의로 벌 수 있는 게 아니다. 평범한 급여생활자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잘못 살았나” 싶고, 노동 의욕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不動産)은 말 그대로 토지나 건물 등 옮길 수 없는 재산이다. 농산물이나 가전제품처럼 이동, 택배가 불가능하고 창고에 보관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유통 자본주의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유통 자본주의는 수요와 공급,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황과 무관하게, 자본가의 창고와 금융에 의해 좌우되는 시스템인데 부동산에도 이 법칙이 적중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는 줄고 빈집은 많은데, 왜 아파트가 비싼 것일까. 가격은 왜 그리 출렁대고, 공급 공약은 남발되는가. 일본은 오래전부터 빈집 문제가 심각했다. 전국의 빈집이 846만가구라는데, 더 될 것이다. 일본의 인구는 1억3000만명인데, 빈집이 약 1000만가구라니. 13명당 빈집이 하나다. 그중 10%가 도쿄 근방에 있고, 이 중 70%가 부촌을 포함한 도심에 있다고 한다. 집값이 비싸니 젊은 세대는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고도 제한 때문에 매입을 꺼린다. 소유자가 고령인 경우 팔겠다는 판단을 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부촌은 부촌대로 빈집 위기를 겪는 셈이다(동아일보 3월15일자). 여기 사정도 비슷하다. 한국의 빈집은 126만5000호(2017년 인구주택총조사). 게다가 우리는 폐가나 오피스텔의 장기 미임대, 읍·면·동 지역의 5가구 이하 빈집은 사유재산을 보호한다며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다.

전문가들은 전국에 300만호 정도의 빈집이 있다고 추정한다. 아파트 빈집이 67만호로 가장 많다. 단독주택은 31만호. 전체 빈집 가운데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은 38만호이고, 전남 지역이 5만6000가구로 가장 많다. 우리도 일본처럼 ‘지방’에만 빈집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도권에 더 많다. 경기도 용인의 한 대형 아파트 단지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건설됐지만, 165㎡(50평형) 이상의 아파트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판매되지 않고 있다.

빈집이 환경, 범죄, 슬럼화 등 차원에서 사회적 문제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내 집이 없다는 불안과 늘어나는 빈집의 모순. 상황이 심각해지자 서울시는 전담부서를 만들어 늘어나는 빈집을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서울시와 산하 기관인 SH는 장기간 방치되어 있는 빈집을 사회주택으로 공급하는 ‘빈집 활용 사업’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한다고 밝혔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사건으로 이 조직의 정체를 처음 알았다. SH는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약자로 영문명은 Seoul Housing and Communities Corporation, LH는 Korea Land & Housing Corporation이다. 이름 그대로 공동체로서 주택, 주거 환경을 보호하는 국가기관이다. 그런데 직원들은 직장을 일터가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시민을 조롱한다. 이 기관이 빈집 사업을 맡으면, 또 다른 비리가 발생할 것 같다.

집이야말로 가장 많이 재활용해야 할 대상이자 문화유산이다. 여당은 -젠더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부동산 이슈에 대해 선거 때만 유권자에게 비굴한 태도를 보이지 말고 해결 방안을 찾기 바란다. 어느 정권도, 어느 공직자도 부동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빈집 재활용으로 발상의 전환을 하면 어떨까. 이미 서울시는 사회적기업과 협력, 빈집을 재구성하여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는 공유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건설회사들은 ‘건설’을 하는 데가 아니다. 환경, 인간관계, 공동체 파괴가 목적인 회사들이다. 누가 서울시장이 되든 아파트를 더 이상 짓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빈집을 활용해야 한다. 실제로도 후자가 훨씬 경제적이다.

대다수 국민이 평생을 겪는 ‘내 집 마련’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면? 인지 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삶은 좀 더 풍요로울 수 있다. 인지 자본주의는 물질 중심 자본의 질주에 제동을 걸고, 인간의 의식과 정서, 환경이 결합된 자본주의에 대한 재해석이자 새로운 지향이다. 인지(認知)도 자본의 영역이라는 얘기다.

공동체 구성원의 고통이 지속되기를 원하는가. 건설 자본을 견제할 수 있는 정치인을 기대한다.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몇몇 사람이 원치 않을 뿐이다.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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