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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하고 1966년에 첫 상영된 이후에 아직도 가끔 국내 TV에서 재방영되고 있는 서부활극 영화가 있다. 국내에 개봉할 때 제목을 ‘석양에 돌아오다’라고 붙였지만, 원제목인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로 더 잘 알려진 영화이다. 이 영화의 원제목은 특정 상황과 그 상황에 속한 주요 인물들을 묘사하는 촌철살인으로 현재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4·7 보궐선거는 ‘The Good(선한 자)’은 없고 ‘The Bad(나쁜 자)’와 ‘The Ugly(추한 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구도였다.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하는 한탄과 이런 구도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불편함에 대한 울분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승부를 가른 계기는 3기 신도시 지정 지역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부동산 불법투기를 했다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폭로였다. 나아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민주당 의원의 전세 인상 관련 보도는 민주당의 반전 가능성마저 차단한 결정타였다.

그런데 개발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에 투기하고 거액의 이득을 남긴 일은 문재인 정부 때 처음 발생한 문제가 아니고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적폐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국민의 분노와 좌절이 오롯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로 향했던 것일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다는 점만으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다.

이에 대한 답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보궐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한 청년이 “국민의힘이 맘에 들어서가 아니다, 오세훈이 잘 나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위선에 지쳤다, 그래서 오세훈한테 기회를 한번 주려고 할 뿐이다, 똑바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서로 상대방을 가리켜 바뀐 게 없는 ‘The Bad(나쁜 자)’라고, 내로남불의 ‘The Ugly(추한 자)’라고 비방하는 네거티브의 극치였다. 결국 이번 보궐선거 결과는 ‘The Ugly(추한 자)’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과 분노가 얼마나 누적되어 왔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중요했던 이유는 1년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선거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특정 대선 후보나 특정 정파와 정당에 미칠 영향이나 정계 개편 관련 시나리오 등이 언론과 국민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런데 이번 보궐선거를 이런 프레임으로 읽는 것은 정치기술자들의 시각일 뿐이다.

20대 대통령 선거일까지 11개월 정도 남았다. 향후 이 기간 동안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은 야권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오세훈 시장의 보궐선거 공약을 보면 여전히 기득권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있다는 한계를 느낀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정책 처방을 제대로 제시하지는 못하면서 집권당의 실정에만 기대는 전략이 또다시 통할 것이라고 야권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촛불시민의 염원으로 집권, 지방선거 압승, 총선 대승이라는 정치적 기반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 4년 차에 이처럼 심각한 민심 이반이 발생한 원인을 깨달아야 한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부동산정책과 경제구조에 대한 고려 없이 밀어붙였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라는 두 경제정책의 명백한 실패와 검찰개혁인지, 수사 방해인지 헷갈리게 만든 검찰과의 극심한 대립 및 비상식적 인사에 대한 분명한 청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요구를 민주당을 더 보수화시키는 요량으로 삼는다면, 민주당에 미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정치인과 정치권만 탓할 일도 아니다. 언론, 시민사회, 지식인들이 바른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도 인정해야 한다. 왜 당신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고 또 그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가? 등을 11개월 동안에 대선 후보들에게 끈질기게 묻고 이를 토대로 후보를 평가해야만 한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경쟁은 사라지고 돈풀기식 공약과 기득권의 이익에 봉사하는 규제 완화 약속만 난무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불편한 선택을 강요받는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다. 대선에서는 그런 상황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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