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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몸을 이번 생에 제도하지 않으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서 제도할까(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다음 생을 기약하며 포기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라는 불가의 경구다. 윤회를 믿지 않던 선비들도 나태함을 경계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하곤 했다. 김창협은 일상의 분주함 때문에 안정을 취할 시간이 없다고 호소하는 제자에게 스스로 마음의 주재를 확립하지 않으면 상황에 끌려 다니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경계하면서, 이 구절에 유념하여 그 고리를 끊도록 권하였다.

조귀명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는 것만 위해 살 수는 없는 일. 이번 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 구절을 인용했다. 그러고는 생을 걸 만한 목표로 학문과 문장이라는 두 가지 불후의 업을 내세웠다. 감당해 내기에 너무 큰 포부라며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이런 말을 던졌다. “쉽게 하는 말치고 제대로 실천하는 경우가 없더라. 남보다 빨리 잘나가면 몰락도 빠른 법이지.”

당연한 진리인 듯 통용되던 이 말에 대해서 조귀명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였다. “애초에 말조차 하지 못했다면 실천을 기대하기나 했겠으며, 빨리 잘나가지 못했다면 금세 몰락할까 걱정할 일이나 있었겠는가? 문제는 실천하지 않거나 금세 몰락하는 데에 있는 것이지, 쉽게 말하고 빨리 잘나가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쉽게 한 말을 단단히 잡아서 책임감 있게 실천하고, 빨리 이룬 성취가 지속 가능하도록 스스로 경계하면 될 뿐이다.”

분주한 일상과 예측 불가한 상황들에 지쳐서 차분하게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계획할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해마다 연초에 너무 쉽게 세우고 표명한 계획들, 성공으로 이어질 것 같았던 작은 성취들이 얼마 못 가서 허사가 되어 버린 경험들 때문에 계획과 시도조차 심드렁해져 버린 것일까. 하지만 끌려 다니기만 하는 삶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작은 부분이라도 스스로 주인이 되어 바꾸어 가는 삶을 소망한다면, 다시 또 무언가 계획하고 시도해 볼 일이다. 그러라고 새해가 주어진 것이 아닐까.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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