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결정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보석허가율이 40%를 밑돌고 점점 더 낮아지는 추세인데 전직이 고려되어 구치소 담장이 낮아진 것 아닐까 하는 의혹 때문이다. 보통 피고인들은 보석을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데, 권력이나 돈 있는 피고인은 심심찮게 보석으로 풀려난다. 주로 병보석이다. 자유를 만끽하던 권력자나 재벌총수들이 좁디좁은 교도소 독방에 갇혀 생긴 병인데 여느 피고인은 상상도 못하는 사유로 풀려나는 것이다. 피고인이 누구냐에 따라 보석 여부가 갈린다고 ‘유권무죄’ ‘유전무죄’라는 말도 유행이다.

피고인 이명박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피고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보석신청은 기각된 것을 보면 권력자라서 특혜를 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의혹의 눈초리와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방어권보장이 형사법의 대원칙이지만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의 보석은 시민적 상식과 정의감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 재벌총수들이 감방생활을 피하는 수법인 병보석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법 앞의 평등은 권력 앞에서 맥을 못 춘다는 비판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보석사유가 있으면 석방해서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결정이지만 그동안 보석을 재벌총수와 정치인처럼 막강한 변호인단의 조력을 받는 자들에게 선별적이고 예외적으로 허용해 온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것이다.

누구든 법 앞에서 똑같이 대접받기를 원한다. 누구든 형사소송법상 구속사유가 있으면 구속되어야 하고, 구속 이후라도 보석사유가 생기면 석방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 피의자·피고인이 대통령이었든, 재벌총수로서 국가경제를 위해 애썼든 그런 사정들이 고려되어서는 안된다. 법과 원칙이 흔들려 나라가 휘청거렸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면 피의자·피고인이 전직 대통령이나 전직 대법원장이라고 달리 대우해서는 안된다. 그들도 법 앞에 평등해야 할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만 인권이 있고 방어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권력자들이 피의자로 소환되고 수사대상이 되면서 피의자의 인권과 방어권이 화두가 되었다. 피고인 이명박의 보석결정에서 판사가 무죄추정의 원칙과 방어권을 근거로 제시한 것처럼, 피의자 양승태가 검찰청 포토라인을 무시하자 이를 옹호하기 위해 포토라인 세우기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허무는 야만적 행위라는 비판이 사법부 내에 있었다. 그에게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자 비로소 영장남발의 문제를 제기하고 사법농단 수사에서 밤샘조사의 반인권성도 부각시켰다. 전직 대통령, 전직 대법원장과 고위법관, 정치인 등의 수사와 재판에서 비로소 기존 관행이 이슈가 되고 인권감수성이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아무리 주장해도 듣지도 보지도 않다가 자기 식구들이어서 갑자기 눈과 귀가 트인 것 같다. 그러나 과거 실무관행에 대한 자기비판이나 성찰은 찾아볼 수 없었으니 식구 감싸기와 조직방어의 이기심으로 비칠 뿐이다. 전직 대법원장의 포토라인 관행 무시행위나 보석허가의 근거로 판사가 제시한 방어권 보장 등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결정하거나 행동하고도 때와 장소가 적절치 않아 욕을 먹거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법과 원칙이 사람 봐가면서 달라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은 심판대에 서 있는 자가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고 법과 원칙을 지켜야 정의가 세워짐을 상징한다.

전직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한 판사도 안대로 눈을 가렸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힘이 보석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른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고인 이명박의 보석결정이 특혜라며 비판할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이 결정이 보석결정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구속된 거물급 정치인 피고인이 불구속재판을 청구하면 일응의 잣대가 될 것이다. 구속사유인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더라도 방어권 보장을 위해서 석방하되 거주지 및 통신제한과 같은 엄격한 조건을 부과하면 된다는 취지이므로 보석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보석허가결정의 기준이 다시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돌연사 위험성까지 주장했는데 병보석사유로 인정받지 못했으니 이제 웬만하면 병보석은 어려워졌다고 봐야 한다. 구치소 내 의료진이 충분하다는 이유다. 나아가 무죄추정의 원칙과 방어권의 중요성이 확인되었다. 재판상 방어권은 권력자나 재벌총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다. 사법부가 실천하는 법 앞의 평등이 헌법에 생명을 불어넣고 불신의 사법부를 살려내는 길이 될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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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