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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시선

달력에 슬픔이 가득한 4월

경향 신문 2021. 4. 19. 10:03

4월은 가장 슬픈 달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시인 엘리엇의 오래된 구절을 옮겨오지 않더라도 12장 달력 중 네 번째 장은 종이 한 가득 슬픔이 배어 있다. 세상은 온통 초록빛 생명의 기운으로 시끌벅적한데, 달력에 남겨진 과거의 4월에는 슬픔의 기록이 가득하다.

지난 3일은 제73주기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념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지만, 그동안 유해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었던 지워진 시간이었다. 16일은 4·16 세월호 참사 7주기였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커다란 배가 뱃머리만 남기고 물에 잠기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TV로 생중계되었고, 얼마 뒤 사람이 남아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계 초침이 멈춰서고 발밑이 무너지는 충격과 공포였다. 7년이 지났지만 진상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것만으로도 나에게 4월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아득한 슬픔이다.

1960년 오늘은 훗날 4·19 혁명이라 불리는 큰 시위가 있었다. 권력을 위해 부정선거를 꾸며낸 이승만 정권을 향해 ‘3·15 부정선거 무효’를 외치던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4월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학생의 참혹한 시신이 발견되고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 앞으로 모여든 시위대에게 경찰이 발포하면서 100여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다쳤다. 계속된 국민적 저항으로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났다. 4월 달력에는 피로 쓴 민주주의의 역사가 남았다.

그래서일까. 올해 4월은 더 슬프다. 미얀마에서 들려오는 소식 때문이다. 미얀마 군부는 선거에서 아웅산 수지를 비롯한 민주진영이 많은 지지를 받자 올해 2월 선거결과에 불복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부당하게 권력을 장악한 군부에 맞서, 평범한 미얀마 시민들은 70여일 동안 ‘민주주의’를 외치며 목숨을 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군부는 실탄 발포를 비롯한 야만적인 방법으로 시위대를 탄압하고 있고,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700명이 넘었다. 계속된 시위에도 군부 지도자인 흘라잉 사령관은 오는 24일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등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민주진영을 중심으로 한 반군부 시위대는 국민통합정부를 출범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우려된다.

군부는 시위대가 심각한 폭력행위를 저지른다고 하지만 현지 소식에 따르면 사망자 중에는 도망치던 시위대에게 문을 열어주다 총에 맞아 사망한 14세 어린아이를 비롯하여 폭력과 무관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특히 시위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많이 희생되고 있다. SNS를 통해 전해지는 현지 군부의 모습은 마치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미얀마 음력으로 4월은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달이다. 예년 같으면 새해를 맞아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한 해의 안녕을 바라는 ‘띤잔 물축제’가 한창일 때다. 그러나 올해 미얀마 시민들은 군부가 주최하는 축제를 거부하고, 저항의 의미를 담은 ‘세 손가락 경례’ 그림이 그려진 화분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국제사회의 연대가 절실하다. 슬픈 역사를 경험한 우리나라가 앞장서자. 더 이상 슬픈 죽음의 기록을 4월에 남기지 말자.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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