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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2판4판]토끼 농장 (출처:경향신문DB)

바이러스가 발발했을 때 반드시 따라야 할 원칙이 있다. 방역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까지 정쟁의 소재로 삼을 경우 국가의 방역정책이 정당의 탐욕이나 대중의 공포로 인해 정치적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는 국민의 생명이 달린 사안을 자신들의 정치적 어젠다를 확산할 기회로 여기는 여러 세력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여야의 구별이 없어 보인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수습의 책임을 진 정부 측에서는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평가절하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경고의 목소리를 묵살하기 위해 코로나바이러스를 철마다 찾아오는 인플루엔자와 동일시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규모 감염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머잖아 코로나는 종식될 것”이라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 짜파구리 오찬 사진을 홍보용으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반면, 반대편에서는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기 위해 국가의 방역대책을 싸잡아 비난하기 마련이다. ‘방역에 실패했다’는 이미 내려진 결론을 위해 그들은 인과관계를 왜곡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진즉에 ‘중국인의 출입을 봉쇄했어야 한다’는 주장. 확진자가 이미 7000명을 넘었지만 그중에서 중국인에 의한 감염의 사례는 겨우 한두 건에 불과하다. 또 진즉에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한 미국에서도 바이러스는 폭발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런 접근은 그릇된 인과관계를 설정함으로써 방역에 혼란을 주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유일하게 중국에서 오는 직항편을 끊었던 이탈리아에서는 중국인들에게만 집중하는 바람에 그보다 더 유동인구가 많은 유럽인들을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그들이 의심했던 중국인들은 검사결과 모두 음성으로 밝혀졌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진 후에야 뒤늦게 0번 환자는 유럽인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봉쇄의 논리가 옳다면 같은 논리에 따라 당장 확진자의 90%가 나온 대구·경북부터 봉쇄해야 할 게다. 하지만 그 많은 중국봉쇄론자들 중 어느 누구도 감히 대구를 봉쇄하자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이것만 봐도 중국봉쇄설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와 베네치아까지 봉쇄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극단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이럭저럭 사태를 수습해 가고 있다.

한편, 그 반대편에서는 분노한 대중의 시선을 애써 종교와 지역으로 돌리려 한다. 서울시장은 신천지 교주를 ‘살인죄’로 고발했고, 한국의 두테르테 경기도지사는 그를 쫓아 야밤에 신천지 본부로 쳐들어가더니, 급기야 주일예배를 강제로 금지시키는 행정조치까지 검토 중이란다. 방역을 핑계로 대나, 이 오버액션이 대중의 뇌리에 자신을 대선주자로서 확실히 각인시키려는 포퓰리즘 전략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대구사태” “문재인 폐렴” 등 

‘네이밍’ 전술로 정치적 악용에 

낙인찍어 고립시키는 언동들


가장 질이 안 좋은 것은 특정 지역에 낙인을 찍어 고립시키는 언동이다. 소설가 공지영은 코로나19 확진자 현황과 2018년 지방선거 결과가 담긴 사진을 올리며 “투표의 중요성 후덜덜”이라 썼다. 더불어민주당 청년위 소속의 한 인사는 “대구는 어차피 미통당 지역”이고 “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다른 지역은 안전하니 TK는 손절해도 된다”고 썼다가 보직에서 해임됐다.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은 이번 사태를 “대구사태”라 명명했다.

코로나19 이슈의 정치적 악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네이밍’의 전술이다. 보수언론에서는 여전히 ‘우한폐렴’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 사태의 원인이 정권의 친중정책에 있다고 못 박아 두려는 게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것을 ‘대구폐렴’이라 부른다.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대구에 있다는 얘기다. 미래통합당의 어느 예비후보는 “문재인 폐렴 대구시민 다 죽인다”고 외친다. 그냥 ‘코비드19’, 아니면 (일본처럼) ‘신종폐렴’이라 부르면 안되나?


광주시민 “환자 수용” 선언처럼

작작 좀 하자, 다들 알지 않는가 

혐오·봉쇄 아닌 연대가 답임을


다들 미쳐 돌아가는 가운데 지난 1일 광주시민들은 대구의 경증환자들을 수용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그것이 “광주의 길”이라고 말할 때, 그들은 머릿속으로 그 옛날 봉쇄된 도시에서 살았던 무서운 체험을 떠올렸음에 틀림없다. 그때 광주를 봉쇄했던 자들은 그 불행한 사건을 ‘광주사태’라 불렀다. 작작들 좀 하자. 다들 알지 않은가. 선동이 아니라 과학, 불신이 아니라 신뢰, 혐오가 아니라 이해, 봉쇄가 아니라 연대만이 해답이라는 것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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