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좋은 거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할 때의 그것은 입이 큰 생선이겠지만, 와 그래요 대구?라고 할 때의 그곳은 어엿한 사람들이 무리지어 사는 도시다. 거창에서 가장 가까운 대처라 많은 내 고향분들이 대구를 비빌 언덕으로 알고 살아온 바이기도 하다. 그동안 큰 언덕이라고만 알았는데 옥편에서 구(邱)를 뒤적이니 구릉을 넘어 무덤, 분묘의 뜻도 있다. 병풍 같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이라서 무척 덥겠거니 했는데 어찌 보면 이름에서 이미 더운 기운을 바탕으로 깔고 있겠다는 느낌도 든다.

그 대구의 한편에 위치한 불로동은 不老洞이다. 불로라면 불사일 것이 마땅할진대 역설적으로 삼국시대에 조성된 어마어마한 무덤군이 있다. 얼마나 양지바른 곳이었기에 이리도 많은 무덤일까. 당시엔 울창한 숲에 둘러싸였을 테지만 이제는 탱자나무 울타리만 초라할 뿐이다. 그래도 하늘과 내통하고 호령하는 무덤의 정기는 살아 있어 다종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기를 되풀이한다.

어느 주말의 오후 2시, 나는 불로동 무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2년 만의 두 번째 방문이었으니 또 2년만큼 정확하게 늙은 몸이었다. 그나마 잘 먹는 재주를 가진 자로서 불로동에서 터득한 게 있다. 무덤군에 갈 때는 조금 불콰한 기분으로 가는 게 좋다! 이날은 배우 안재모씨가 광고모델인 불로막걸리를 공원 입구의 칼국수집에서 음복하듯 한 잔 걸치고 입장했다. 술기운 탓인가. 무덤 곁을 지나치려니 나의 다음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아무리 불로동에 드나든다 한들, 탱자나무 가시로 막는다 한들 불사할 수는 없는 법이다. 허벅지 근육의 탄력이 헐렁해지듯 호주머니 속의 금쪽같은 시간이 점점 묽어지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무덤은 무의 덤. 언제나 봉긋하고, 포근한 곳. 다정하고도 덤덤하다. 대구 불로동 무덤 사이를 돌아다니는 뻣뻣한 똥막대기를 바닥으로 쓰러뜨리는 건 애기자운이다. 작지만 야무진 꽃이다. 지하 뿌리에서 직접 잎과 꽃이 따로따로 나온다. 대체적으로 털이 빽빽해서 나오자마자 늙었다는 느낌도 주는 애기자운. 턱 괴고 엎드려 꽃을 맞추는데 자꾸 꽃 너머가 눈에 들어왔다. 대구에서 무덤에 파묻히고, 불로동에서 불로막걸리를 마신 하루. 살아 있을 때 모름지기 살아야 하는 것처럼 그 어떤 아귀를 딱딱 맞춘다는 느낌이 흠뻑 들었다. 애기자운,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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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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