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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가장 사랑하고 기대했던 제자 안연(顔淵)이 먼저 죽자 공자(孔子)는 매우 큰 슬픔에 빠졌다. 애통함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아아!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라는 탄식만 되풀이하였다. 그런 공자에게 안연의 아버지 안로(顔路)가 찾아와서 공자가 타고 다니는 수레를 팔아 자식의 장례에 쓸 외관(外棺)을 장만해 달라고 부탁했다.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잘났든 못났든 각자 제 자식을 말하는 법이지요. 그러니 부모 된 마음으로 외관을 장만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라고 왜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아들이 죽었을 때 수레를 팔아서 외관을 사지는 않았습니다. 보잘것없지만 저도 대부(大夫)인데 수레 없이 걸어 다닐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수레가 대부의 필수품이라는 당시로서는 상식에 속하는 이유를 댐으로써, 자신이 안연을 아무리 대단하게 여긴다 해도 하나밖에 없는 수레를 팔 수는 없는 사정을 말했다. 언뜻 구차해 보이는 답변이지만, 사실 공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장례를 분수에 넘치게 치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잘 알기에 자신의 경험을 들어서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힌 것이다.

공자로서는 겸손의 표현이었지만, “잘났든 못났든 각자 제 자식을 말한다(才不才亦各言其子也)”는 구절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 자식에게만큼은 객관적 평가보다 훨씬 더 큰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중국의 대문호 소식(蘇軾)은 어린 아들이 글 한 편을 써서 보여줄 때마다 며칠 동안 기뻐서 먹고 자는 일상마저 즐거웠다고 하였다. 그 글 자체가 대단해서였겠는가. 어린 아들의 글이었기에 이역만리 타향살이의 적적함도 달랠 수 있을 만큼 대견했던 것이다.

내일이면 부모들의 각별한 기대를 받으며 수많은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 모두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전례 없이 어려운 환경에서 준비해온 만큼 부디 별 탈 없이 차분하게 치러내길 기원한다. 그리고 자녀가 자신의 힘으로 작게나마 결실을 이루었을 때, 그리 대단치 않더라도 매우 대견하게 여기며 즐거워하는 부모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고3 학부모로서 스스로 당부하는 말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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