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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대서양 중심의 세계지도를 보며 자란다. 이 대서양 중심 지도를 보면 세계의 중심은 유럽,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사회의 중심인 동부에서는 유럽이 서부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동아시아는 저 오른쪽 끝에 자리 잡은 변방이다. 한때 동아시아를 ‘극동(Far East)’이라고 지칭했던 이유다.

이 대서양 중심 지정학적 관념은 미국의 세계전략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다. 나토는 1949년 출범 당시엔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태리를 포함해 12개국이었지만 현재는 동유럽 국가들을 포함, 30개국이 회원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군사동맹이고 또 동시에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정치동맹이기도 하다. 이들 회원국 전체의 2019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42조달러를 넘어 전 세계 경제규모의 48% 정도다. 인적 및 물적 교류, 정보흐름 양에서도 서로 긴밀하다.

그렇다면 이 나토 회원국들은 미국 정부의 대중국 압박 요구에 어떻게 응해 오고 있을까? 일단 경제와 군사안보 문제는 분리해서 접근 중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작년 12월에 타결된 중국과 유럽연합(EU)의 투자협정이다. 당시 당선자 신분이었던 바이든과 그의 외교팀에서는 이 투자협정 타결에 적극 반대했다. 하지만 여러 쟁점 사항들에 대해 중국 측이 전향적으로 양보하면서 극적으로 타결된다. EU 측에서는 중국이 지난 20여년 동안 지속해 온 경제자유화 조치를 과거로 되돌릴 수 없도록 하면서 EU 기업들이 다른 나라 기업들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도록 한다는 계산을 했던 것이고,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갈등을 EU와의 경제협력 강화로 완충시키려 한 것이다.

이 투자협정이 발효된다면 미국으로서는 대중국 압박에서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작년에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EU의 제1무역상대국이 됐고, EU는 여전히 세계 2위의 경제단위체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선 이 투자협정의 발효를 막고 5G 및 새로운 기술경쟁 분야에서 EU와 협력해 중국을 압도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 투자협정의 유럽의회 비준이 불투명하다. 특히 유럽의회에서 중국의 홍콩, 신장위구르 인권탄압 및 코로나19 팬데믹 관련 중국의 책임에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다. 향후 추이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다른 한편 나토회원국들은 남중국해 문제와 중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바이든 행정부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는 프랑스, 독일, 영국이 미국, 일본과 공동보조를 맞추며 점점 더 단호하게 대응해 나가고 있다. 올해 영국은 일본 및 미국, 호주, 네덜란드와 해상 공동훈련을 할 예정이고 독일도 사상 최초로 8월에 남중국해에 군함을 보내기로 했다. 이들이 단호한 이유는 중국 측의 9단선 주장이나 주변국들에 대한 압박이 국제법과 1982년 타결된 유엔해양법조약을 무력화하는 시도이고, 나아가 ‘민주주의연합’이 만들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둑이 터지기 전에 막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점증하는 경제력이 군사 및 정치적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팽창하는 중국의 힘과 영향력은 1979년 이후 40여년간 지속되고 있는 동남북아시아의 힘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고, 새로운 균형이 달성될 때까지는 갈등의 양상으로 지속될 것이다. 이 갈등 속에서 한국은 단기적으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런 모호성이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한국의 국익에 부합할지는 치열한 내부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 양자동맹, 양자외교만으로 풀기엔 한계가 분명하다. 한국의 기존 외교안보 전략의 지평을 넓혀 대서양 동맹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역내의 다자주의 경제협력 틀을 아시아판 평화체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시아를 서양의 변방으로 인식하며 1950년대에 구축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체제를 21세기 버전으로 변환해낼 필요가 있고 미국의 역할 변화 또한 적극 주문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의 용인하에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는 일본 보수우익 노선도 견제하면서 중국으로부터의 일방적 압박이나 위협에 역내 국가들이 집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더 많은 참여와 비용부담 이전에 나토동맹국 간 관계에 준하는 지위와 권리도 주장해야 한다. G7에 더해 한국, 인도, 호주가 참여하는 ‘10개국 민주주의’(D-10) 포럼에의 적극 참여는 그 긴 여정의 첫 출발이 될 수 있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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