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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댓글이 여론이 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당장 사형이 집행되겠지. 공권력에게 개인 생명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할 수 있냐는 말은 인면수심의 흉악범들을 옹호하는 것과 무관함에도 사람들은 ‘그게 그거라면서’ 빈정거리겠지. 강한 형벌이 좋은 사회를 보장한 역사가 없었다고 ‘왜 저런 인간을 공짜로 밥 먹여 주냐’는 무적의 논리만 떠돌겠지. ‘잘못하면 죽어도 싸다’는 말이 어린이의 입에서도 등장하면 개인들끼리의 응징도 일상이 되겠지. 그곳에선 사형도 더 잔인한 등급으로 나눠지겠지.

댓글 같은 세상에서는 정치인들이 ‘여성만의 차별은 없다’고 천명하겠지. 특정성별이 성폭력에 더 노출되는 명명백백한 사회문제는 ‘남자도 피해자인 경우도 있기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래서 평범한 개인문제로 납작하게 찌그러지겠지. 마찬가지로 따지면 노인만 외로운 것은 아니니 노인문제는 없는 것이고, 일자리 고민은 청년만 하는 게 아니니 청년문제는 없는 것이고, 코로나19 시대에 자영업자만 힘든 것도 아니겠지. 하지만 이건 구분해도 저건 구분하지 않지.

여성의 공포를 짚는 건 남성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님에도 자꾸만 ‘여자만 힘들어?’라는 우문만이 맴도니 많은 이들이 그저 별 수 없다면서 체념하고 살아가겠지. 차별이, 차별이 아니게 되면 사람들은 익숙한 성별 분업을 따를 것이고, 그 세상에서는 아무리 성차별이 심각해도 누구도 성차별을 말하지 않겠지. 여성의 목소리가 변방에 머물수록 남성들은 ‘남자답게’ 살아야 하는 부당함에 노출되는데, 아무도 이런 세상을 비판하지 않고 ‘여자보다 남자가 힘들다’는 푸념만 늘어놓겠지. 아, 성소수자는 분명 섬에 격리될 거야. 난민? 아마 바다에 빠트리라고 하지 않을까?

노조라는 말은 사라질 거야.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파업할 권리를 부정해야지만 열린 마인드라고 칭찬받을 거야.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은 여기가 자본주의 사회니까 따져서는 안 되겠지. 그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엄하게 살기 위한 자본의 올바른 분배에 관한 논의는 능력주의, 자기관리 등의 희망으로만 포장된 담론 앞에서 ‘평소에 열심히 살지 않은 자’의 자격지심으로 조롱받겠지. 불평등이 당연한 곳에서 공공이란 말은 빈민구제의 성격 그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하니 가난과 장애는 동정심의 대상으로만 전시되겠지. 지금도 그러하지만 더더욱.

약자의 삶이 달라지는 걸 역차별이라고 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이 평등해지려는 사회변화를 유난 떤다고 여기는 이들의 언어는 공격적이다. 강연장에서도 주장이 해괴한 사람일수록 그 목소리가 크고 폭력적인데, 관계자들은 그 사람 눈치를 보기 바쁘다. 방송에서 성소수자 차별을 이야기하자 ‘적절하지 않다’는 글이 수준 낮은 언어로 올라왔는데 피디는 ‘여론이 좋지 않다’면서 자중을 요구한다.

인터넷에서 관성대로 뱉어진 언어들을 원천 봉쇄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이를 유의미한 의견처럼 대해 혐오의 언어들을 응집시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하지만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늘 그런다. 소수자를 향한 조롱을 유권자의 마음이라며 포장한다. 철학 따윈 없이 그저 ‘댓글처럼’ 세상을 만들 분위기다.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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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4050300035&code=990100#csidx8ba2e5d7b77bfc89861a6d0f4a730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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