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5일 서울의 한 엘리베이터 안.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한 남성이 기침하자 다른 남성이 왜 마스크도 안 쓰고 기침을 하냐고 따졌다. 뭔 훈계냐며 맞받아치자 격분해 몸싸움을 벌였다. 3월9일 광주의 한 주차장. 마스크 없이 운전하러 온 대리기사에게 왜 마스크를 안 쓰고 왔냐고 손님이 물었다. 대리기사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분노로 멱살을 휘어잡고 주먹을 휘둘렀다. 같은 달 17일 부평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나가던 행인을 한 남성이 쫓아가 따져 물은 후 목을 조르고 폭행했다.

이달 5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공공장소에서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정부가 이날부터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를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완화했지만, 코로나19가 가장 심했던 대구는 이와 별도로 강도 높은 방역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5월13일부터는 이를 위반하면 관련법에 따라 고발 조치하여 최대 300만원 벌금형을 받을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대구참여연대는 충분한 논의와 공감 없이 내려진 이번 행정명령이 시민을 계도와 통제 대상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대구시는 5월26일까지 계도 기간을 연장하고 그 기간에는 벌금형을 유예하겠다며 한 걸음 물러섰다.

코로나19가 도시 공공장소의 풍경을 뒤바꾸고 있다. 도시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은 대개 서로 이름도 생애사도 모르는 이방인으로 만난다. 그런데도 같은 사회적 공간을 점유하며 함께 질서를 만들어가야만 한다. 이방인들은 상대방에 대한 즉각적인 관찰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상호작용의 질서를 만들어간다. 이를 위해 상대방의 겉모습에서 얻은 정보가 실제의 그를 드러낸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한정되어 있어 그의 진정한 동기, 목적, 의도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심하게 된다.

도시 공공장소의 삶은 신뢰와 의심을 동시에 해야 하는 역설에 놓여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도시 공공장소에 나서는 사람은 모두 자신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야만 한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을 상대방에게 심어주지 않는 겉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누구든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한 겉모습을 하고 공공장소에 나올 의무를 지닌 이유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이를 ‘몸 숙어’(body idiom)라 불렀다. 어느 사회나 도시 공공장소에 나올 수 있는 몸 숙어는 그 사회 특유의 방식으로 관례화되어 있다. 이 관례화된 몸 숙어를 이해하게 되면 생면부지의 이방인들도 함께 상호작용의 질서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정상적인 몸 숙어를 드러내는 사람은 타자가 접근할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놓는다. 같은 공간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을 관찰하거나 거꾸로 자신이 그를 관찰하는 게 두렵거나 꺼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정상적인 몸 숙어는 상대방으로부터 온당한 사유가 없는 한 실제 접근되지 않도록 막아준다. 정상적 몸 숙어를 하고 공공장소에 나서는 일은 호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호혜성의 규범이 깨지면 감정 질서에 균열이 일고 분노가 삐져나와 마침내 싸움으로 번진다. 

한국 사회에서 마스크는 이제 도시 공공장소에 나갈 때 갖추어야 할 몸 숙어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마스크 착용은 자신을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규범적 행위다. 이러한 변화된 규범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필요한 충돌과 싸움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특정한 몸 숙어를 법으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 잘못을 따져 처벌하는 법의 정의만 가지고는 공공장소의 질서를 안정되게 만들어갈 수 없다. 서로 접근 가능한 사람으로 열어놓으면서도 온당한 이유 없이는 접근당하지 않도록 안내하는 새로운 몸 숙어를 이해하고 호혜적으로 실천하는 게 먼저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suz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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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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