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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문화와 삶

독신의 이유

경향 신문 2020. 11. 19. 11:39

서울 한 중심에, 그것도 빼어난 전망을 갖춘 곳에 고가 주택을 소유한 유명 승려의 생활이 방송에 소개되면서 인터넷 공론장이 와글와글한 한 주였다. 삶의 무게에 시달리는 대중들에게 평소 무소유와 내려놓음의 가르침으로 ‘힐링’의 길을 안내한 이였기에 사람들은 더한 배신감을 느꼈나보다. 사실 사람들이 구입한 것은 미국 명문대 박사라는 상표와 젊고 수려한 그의 외모였을 텐데 말이다. 그보다 더한 종교인이 무수한데 유명세 때문에 혼자서만 과도한 비난을 받는다는 동정론도 나왔고, 본인도 사회적 활동을 모두 접고 수행자의 생활로 돌아간다고 발표함으로써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하다.

사람들의 반응 가운데 ‘처자식도 없고 취업 걱정도 안 하고 삶의 고통을 모르는 이가 대중을 교화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글에 특별히 눈길이 갔다. 늘 생각하던 바, 가톨릭 사제나 승려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데는 독신제도 긴밀한 작용을 하지 않나 생각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결혼을 포기함으로써 보통사람의 희로애락까지 버릴 수 있는 게 그들의 특수 지위를 가능케 하는 조건인 셈이다.

가톨릭이나 불교가 수도자 독신제를 채택한 것은 성적 욕망과 소유욕과 사적 인연을 끊고 봉사와 수도정진에 매진하라는 뜻이겠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사람들은 독신의 남다른 길을 택한 그들의 결단에 존경을 바치고, 그들은 이러한 차별성을 곧잘 특권의 이유로 삼는다. 불투명한 장래 때문에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비혼의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터에, 독신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선택은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인지 가톨릭 신학교는 요즘도 입학 경쟁이 꽤나 치열하다고 한다. 적극적 비혼을 택하는 마당에 평생이 보장되는 기회를 잡는데 독신쯤은 전혀 걸림돌이 아닌 것이다.

너무 냉소적인가? 물론 신도가 수만명인 대형 교회를 개인 소유물처럼 여기고 자식에게 세습하는 타락상을 교계마저 승인하는 판국에 독신제는 여전히 종교의 타락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처럼 보인다. ‘최소한 덜 해먹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독신이 이제 의무보다는 권리로 존재하지 않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가톨릭에서는 독신과 마찬가지로 혼인 역시 신의 소명으로 보아 그 가치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사실 사제 독신제는 교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전통에 불과하다. 신부가 자녀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경우가 생기자 12세기 무렵 결혼 금지를 못 박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여전히 기혼자에게 사제 서품을 하고, 가톨릭과 비슷한 성공회 역시 성직자의 결혼에 제한이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교황 등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수 상황에서는 기혼 남성에게 사제직을 서품하는 개혁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불교의 대처승이나 결혼을 허용하는 일본 불교, 동방교회와 성공회 등이 성직자의 결혼으로 인해 특별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결혼 여부보다는 오히려 지구의 절반인 여성에게 성직의 기회가 막혀 있다는 데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독신에 결부돼 있는 신비감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직자의 특권을 유지하는 배경으로도 작용한다.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모르는 종교인이 삶의 어떤 가르침을 주고 모범이 될 수 있는지 묻는 건 타당하다. 가톨릭과 개신교엔 ‘부제’ 또는 ‘집사’란 직무가 있고, 절에도 ‘보살’이란 이름으로 승려 못지않은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 부제와 집사 모두 ‘deacon’이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그 어원인 그리스어 ‘diaconia’는 원래 봉사를 뜻하는 말이었다가 사회 구제와 자선을 위해 만든 교회조직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결혼한 신부와 승려는 왜 그럴 수 없다는 말인가.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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