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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경향시선

돌을 집다

경향 신문 2019. 3. 4. 14:45

돌 하나를 집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돌 하나 밑에 돌의 그림자 하나가 생겼다


돌의 그림자 하나는 얇다 돌 하나에 눌린 돌의 그림자 하나가 오목해지면서 오그라든다


오그라든 돌의 그림자 하나가 돌 하나를 감쌌다


돌 하나를 감싼 돌의 그림자 하나가 있고, 돌 하나의 그림자에 감싸인 돌 하나가 있고,


돌과 그림자는 각각이고 돌 하나를 감싼 적막과 돌의 그림자 하나를 감싼 적막이 각각이다


돌과 그림자와 적막은 겹겹이고 적막은 몇 겹을 겹쳐도 투명하다


- 위선환(194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위선환 시인은 최근에 새로운 시집을 펴내면서 이렇게 썼다. “사물은 낱이고 자체(自體)다. 언어는 사물을 드러낸다. 사물을 드러내는 언어와 언어가 드러내는 사물은 하나다. 언어는 사물이다.”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이라고 했다.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이다. 돌, 그림자, 적막은 각각 독립적이고 고유하고 온전하다. 그리고 저마다 살아 있고, 움직인다. 심지어 돌에서 태어난 돌의 그림자는 돌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도 의지적으로 오히려 돌을 감싼다. 적막을 하나의 사물로, 하나의 존재로 보는 시각도 새롭고 이채롭다. 이런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대립은 사라지고 원융(圓融)의 세상이 될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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