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쿠팡그룹이 올해 처음으로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김범석 의장이 쿠팡의 동일인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김 의장이 미국 쿠팡의 의결권을 76% 이상 행사하고 따라서 한국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도 인정했다. 그러나 에쓰오일이나 한국지엠 등 기존 외국계 기업집단의 경우에 국내 최상위 회사를 동일인으로 지정한 관례를 따랐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제2조는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을 기업집단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동일인 지정의 기준은 ‘실질적인 지배’이고, 공정위는 이런 실질적인 지배를 하는 자연인이 있으면 그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최상위 기업을 지정해왔다.

외국계 기업집단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에쓰오일이나 한국지엠은 모회사인 외국기업이 국영기업(아람코)이거나 전문경영인체제인 기업(GM)이므로, 이들 모회사뿐만 아니라 에쓰오일이나 한국지엠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연인이 없고, 따라서 국내 최상위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반해, 한국 롯데그룹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될 때 최상위 기업인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지주회사에 의해 지배되고, 일본 롯데지주회사는 신격호 전 회장에 의해 실질적으로 지배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 롯데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신격호 전 회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외국계 모기업을 통해 한국 대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연인이라는 점에서 쿠팡의 김범석 의장과 롯데의 신격호 전 회장의 차이점은 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들 자연인의 국적일 수 있다. 물론 롯데가 대기업집단에 지정될 당시 신 전 회장의 국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공정거래법 어디에도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규정은 없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궁색하게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효적인 법 집행이 어렵다는 핑계를 댔다. 믿기지 않는 변명이다.

공정위의 궁색한 변명의 절정은 누구를 동일인으로 지정하든 규제 효과는 동일하며, 뉴욕증시에 상장된 모기업 쿠팡의 공시내용을 보면 김 의장 친·인척 회사와의 내부거래 여부를 알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뉴욕증시 공시대상 친·인척 범위가 우리 공정거래법에서의 범위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김범석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김 의장과 친·인척 소유의 개인회사는 쿠팡의 계열사도 아니고 따라서 사익편취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범석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은 결정에 대한 비판이 일자, 공정위는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방안까지 포함해 동일인 지정제도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공정위의 제도 정비 운운이 모든 대기업집단의 동일인을 최상위 법인으로 지정하자는 재벌들의 억지나 IT 기업집단은 예외로 해달라는 요구를 쿠팡 사례를 핑계로 받아줄 요량이라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이다.

일각에서는 외국인이 동일인일 경우에는 해외계열사에 대한 공시 의무를 면제해 주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뉴욕증시에 상장된 쿠팡 같은 경우에는 해외계열사를 파악하기가 더 쉽다는 사실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또한 현재 한국 재벌들이 이미 해외계열사에 대한 공시 의무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예외 규정의 도입은 역차별 논란과 규제 완화의 구실이 되어, 결국 해외계열사를 활용한 일감몰아주기와 사익편취를 부추길 수 있다.

대기업집단 지정의 첫 관문은 동일인 지정이므로, 동일인 지정은 경제력 집중과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방지라는 대기업집단 규제의 목적에 종속하는 것이다. 엄연히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는데,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사익편취 방지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법인이 동일인이 되면, 총수일가 소유의 개인기업은 재벌의 계열사가 아니고, 따라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특혜를 다 받게 된다. 나아가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해 쉽게 세습도 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재벌왕국’이 되는 것이다.

경제력 집중 해소를 위해 모든 기업에 2층 출자단계 규제를 적용하고, 사익편취를 방지하기 위해 소수주주 동의제(Majority of Minority)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한 공정거래법의 전면 개정과 상법 개정 없이, 현행 법규하에서 동일인 지정제도만 흔들어 최소한의 공정거래법 규율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할 때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