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직설

뒤라스 읽는 여름밤

경향 신문 2020. 9. 1. 11:15

집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 덥고 습한 여름이지만, 작지 않은 위안이 있다면 프랑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의 소설이 연달아 번역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7, 8월에 차례로 출간된 <파란 눈 검은 머리>(문학동네), <여름밤 열 시 반>(문학과지성사), <여름비>(미디어창비),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녹색광선)을 책장에 꽂아두고 틈날 때마다 읽으며 늘어진 밤들을 버티는 여름이다. 1930년대 베트남을 배경으로 중국인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프랑스 10대 소녀의 이야기인 대표작 <연인>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사랑과 억눌려온 욕망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소설들이다.

이성애자 여성인 ‘그녀’와 게이 남성인 ‘그’가 젊고 아름다운 외국인 남성에 대한 욕망을 경유하여 매일 밤 긴밀한 관계를 맺는 줄거리의 <파란 눈 검은 머리>, 스페인 여름휴가 중 살인사건이 일어난 마을에 머물면서 남편 피에르와 친구 클레어의 사랑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시선을 따라가는 <여름밤 열 시 반>, 어느 날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열두 살 소년 에르네스토가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과 여동생,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맺는 복잡한 관계를 담은 <여름비>, 이탈리아의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던 부부들에게 낯선 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미묘한 변화를 그린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네 소설 모두 나른한 권태와 끈적한 공기로 가득한 여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어쩌면 뒤라스에게 사랑이란 그런 나른함과 끈적함 속에서만 이야기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라면 문학에서 수없이 반복되어온 주제지만, 뒤라스의 소설에서 그것을 독특한 질감으로 만들어주는 장치는 인물들의 대화다. 알랭 로브그리예, 미셸 뷔토르, 나탈리 사로트와 함께 1950년대 프랑스에서 새로운 기법을 실험한 누보로망으로 읽히기도 했던 뒤라스의 소설에서 대화는 종종 앞뒤 맥락 없이 끊긴다. 머뭇거리면서 짧게 이어지는 호흡. 반복되면서 흘러넘치는 강렬한 단어들. 그리고 각자의 머릿속에서 사유와 상상이 펼쳐지는 동안 이어지는 긴 침묵. 이것이 만들어내는 대화의 리듬에는 폭발 직전의 열망과 밀도 높은 슬픔이 팽팽하게 가득 차 있다. 소설에서 좋은 대화란 무엇일까. 하나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욕망으로 뒤얽힌 관계에서 인력과 척력이 작동하는 리듬과 닮아 있는 대화라면 번번이 설득된다.

이를테면 <파란 눈 검은 머리>에서 ‘그녀’와 ‘그’는 부재하는 남성에 대한 욕망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육체에서 무언가를 갈구하는데,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다. 서로에게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끌리지만 스스로 무엇을 바라는지도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 모르면서, 충족되지 않는 결핍으로 불안에 울면서, 충동적이고 분절적인 발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촘촘히 짜여 있는 우주의 그물에서 “씨실 하나가 느닷없이 헐거워지는 일”이다. 멀리서 보면 기껏 “명주실 한 가닥에 긁힌 손톱자국”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헐거워진 공백은 운명을 엉클어지게 만든다. 어떤 대화는 그 엉클어진 리듬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름비>를 번역한 소설가 백수린의 ‘옮긴이의 말’에서 빌리자면 “정말 이상한 소설”들이다. 그러나 문학에서만큼은 이상하다는 말도 찬사가 된다. 정말 기나긴 여름밤, 정말 이상한 대화,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일반 칼럼 > 직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각 정보와 함께하는 글  (0) 2020.09.08
청년들은 왜 ‘카공족’이 되었나  (0) 2020.09.02
뒤라스 읽는 여름밤  (0) 2020.09.01
‘턱스크’라는 빌런  (0) 2020.08.26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0) 2020.08.25
요구의 자격  (0) 2020.08.19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