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어느 평일 오후였다. 나는 집 근처의 카페에 혼자 앉아 있었다. 다른 손님이 없어 호젓한 터라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런 시간이란 하루가 알맞게 익어서 어떤 글을 읽어도 난해하지 않고 어떤 글을 써도 난잡하지 않을 듯해 자신만만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카페를 홀로 소유한 듯한 기분인 데다 성질마저 넉넉하고 부드러워져서 나도 다른 작가들처럼 밝고 곱고 따뜻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카운터 안쪽에서 졸던 직원이 일어났고 내가 누리던 평온도 깨졌다.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이는 중년의 부부 뒤로 초등학교 오륙 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따라 들어왔다. 세 식구는 남은 자리도 많았건만 하필이면 내 앞자리에 앉았다. 부부의 얼굴은 검게 그을린 데다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고 딸은 주름이 많이 잡힌 원피스 차림에 토끼 귀처럼 봉긋 솟은 장식이 있는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나는 되도록 그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이혼하자고! 그래, 이혼해! 엄마, 아빠 이혼하지 마, 응?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터라 무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듣다 보니 부부가 무엇 때문에 다투는지를 알게 되었다. 남편 쪽은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던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일로 더는 참을 수가 없으며 시댁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당신도 견딜 수 없다는 주장이었고 아내 쪽은 남편의 오해와 망상이 지긋지긋하며 무능도 분수가 있지 앞으로도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는 바에야 갈라서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거라는 주장이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다투고 있을 수많은 부부들처럼 다투는 거였다. 내가 적이 걱정스러웠던 건 세 식구 가운데 아직 어린 딸아이였다. 부부가 핏대를 세우며 서로를 비난하는 동안 딸은 울먹이면서 엄마와 아빠를 타일렀다. 딸은 급기야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더 잘할게, 그러니까 이혼하지 마, 응? 하면서 부모의 불화와 다툼이 자기 탓이라는 듯 애원했고 나는 그 아이에게 너는 잘못한 게 없단다 하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가슴을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나는 그 부부가 서로를 증오하게 된 내밀한 속사정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함부로 재단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증오가 어디에서 태어났든 저 아이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는 없으므로 이 상황이 자기 탓이라며 자책하는 아이에게 누군가는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그 사람이 그 아이의 부모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였다. 나는 오래전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법원 앞 다방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나란히 앉았고 맞은편에는 아버지가 앉았다. 옛날식 다방이라서 취향에 따라 커피, 프림, 설탕을 타 마셔야 했다. 아버지는 찻숟가락으로 커피는 두 숟가락, 프림은 세 숟가락, 설탕은 두 숟가락을 떠넣었는데 속으로 아버지 입맛도 나랑 다르지 않구나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보다 선명한 기억은 아버지가 찻숟가락으로 찻잔을 젓던 모습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손놀림에서는 당신의 불안과 슬픔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찻잔 안쪽 벽에 찻숟가락이 자꾸만 부딪혀서 따닥, 따닥, 따닥…… 소리가 내내 귓가에 울렸다. 아버지는 식은 커피를 단번에 들이켠 뒤 나를 똑바로 보면서 네 엄마 잘 모셔라, 하더니 벌떡 일어나 다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부리나케 아버지를 뒤쫓아나갔고 법원 담장을 따라 걷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때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이의 얼굴보다 많은 말을 해주기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세 식구는 한결 개운해진 낯으로 일어났다. 서운했던 감정을 다 털어놓고 보니 그런 감정이 별거 아님을 깨달아 머쓱해하는 얼굴로 보였다. 딸이 먼저 카페를 나갔고 부부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나는 분명 부부가 딸의 뒷모습에 잠시 시선을 고정했던 것이라고 믿는다. 부부가 다투는 동안에는 들리지 않았던 딸의 목소리를 그 순간 들은 것이라고 믿는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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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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