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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따뜻한 그늘]농부

경향 신문 2020. 10. 16. 10:31

 

영산강연작, 2020. 김지연

영산강 지역 들판에는 나락이 누렇게 익어 일부에서는 수확을 시작하고 있었다. 엊그제 모가 자라고 있었는데 다시 찾아와 보니 황금들녘으로 변했다. 놀러 다니는 사람들은 많은데 들에서 일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한 할아버지가 들판 가운데서 무언가를 부스럭거리고 있기에 찾아갔다. 길 한쪽에 심어둔 무를 뽑아 가려고 온 것이다. “무시가 밑이 안 들구만이라. 비가 이리 안 오니.” 그이는 아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말했다. “저번엔 긴 장마로 고생하셨잖아요.” 나는 좀 당황해서 얼른 대꾸했다.

대답도 없던 양반은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무심히 상대를 해주었다. 심지어는 봄에 논에서 일하던 농부를 찍었던 생각이 나서 벼논에 들어가서 좀 서주실 수 있는지 부탁을 했더니 묵묵히 발걸음을 해주었다. 그이의 걸음걸이나 웃음, 손발이 오랫동안 땅을 일구어온 농부의 참모습을 말해주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더니 “범띠(여든셋)”라고 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돌아서는데 섭섭함이 남는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만난 시골 사람들의 심성은 소박하고 따스했다. 그런데 왜 귀촌해서 살기가 힘들다고 할까? 어려운 이야기다. 그것은 단적으로 서로에 대한 기대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인들은 소박한 자연을 누리며 개인생활을 기대하는데, 농촌 사람들은 협동과 예의를 바란다. 나주 금천면을 지나다가 과수원에 사람이 있기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더니 따고 남은 늦은 배 서너 개를 손에 들려준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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